[윤기성 신부의 포켓 강론]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마태 20:14)
우리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일치해 감사하며 생활하나요, 아니면 그런 하느님 반대편에 서서 불평하며 자신의 삶을 허비하나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의 정의는 늘 자비를 품고 있음을 기억해요.
“There is always a way to continue to love, even when everything seems irredeemably compromi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