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전: 차 가롤로 신부, 장소: St. Peter the Apostle Parish)
(북미주 한인 사제회의 참석 차)
성전 건립 기원 묵주기도 5만 단 봉헌 시작
(안건: DuPage County 에 제출할 최종 설계 검토)
오근영 요한 수녀, 김경숙 마리아 수녀 (한국 순교 복자회)
(장소: Schaumburg Prairie Center for the Arts)
(1999년 12월 05일부터 2000년 말까지)
본당과 학교의 코비드 19 관련 프로토콜(졸리엣 교구)
Jan 13, 2022 업데이트
코비드19에 노출이 되었을 경우
1. 백신을 최근 정보에 근거한 회차까지 맞았거나 90일 이내에 코비드19에 걸린 후 나았을 경우
A. 코비드19 증상이 없을 경우에는 자가격리를 하지 않아도 됨
B. 실내에서 꼭 마스크를 착용함
C. 확진자 접촉일로부터 최소 5일 후 코비드19 검사를 받고 10일간 증상을 지켜 봄
D. 코비드19 증상이 있을시 즉시 자가 격리를 해야 함
E. 코비드19 양성 반응이 나오면 백시 여부와 상관 없이 5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함
2. 백신을 최근 정보에 근거한 회차까지 맞지 않았을 경우
A. 5일간 자가 격리와 접촉일로 부터 최소 5일 후 코비드 검사를 해야 함
B. 10일간 증상을 지켜보고, 3피트 사회적 거리를 지키며 마스크를 꼭 작용함
C. 증상이 있을 시 즉시 자가 격리를 하며 코비드 19검사를 받아야 함
코비드 19 양성 반응 및 증상을 보일 경우(백신 여부와 상관 없음)
1. 5일간 자가격리 및 마스크 착용
2. 양성반응 후 5일 후, 24시간 이상 해열제 복용 없이도 고열이 없으면 자가 격리 해지.
3. 양성반응 후 5일 후, 코비드 19 증상이 없으면 자가 격리 해지
4. 심각한 코비드19 증상이 있을 시에는 적어도 10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며 자가 격리해지 전 의사의 진찰이 있어야 함
5. 양성반응 후 10일간은 마스크를 착용하며 3피트 사회적거리를 유지해야 함.
* '밀접 접촉자' : 코비드19 확진자와 6피트 이내에서 15분간 또는 24시간 이상 노출된 사람
* 격리 일수 계산법: 확진자와 접촉, 코비드19 증상 또는 양성반응이 시작한 날을 0일로 기준하여 24시간이 지나야 1일로 간주. 확진자와 밀접 접촉, 코비드19 증상 또는 양성반응이 있을 시 최소 5일 격리
본당 연혁
성 김대건 안드레아 주보 성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Andreas)는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 마을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대건의 아명은 재복(再福)이고 이름은 지식(芝植)이라고 하는데, 그의 집안은 열심한 구교 집안이다. 김대건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Pius)와 아버지는 순교로써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다. 신앙 깊은 순교자의 집안에서 성장한 김대건은 굳센 기질과 열심한 신덕으로 충실히 생활하던 중, 16세 때인 1836년에 모방 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가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 프란치스코는 병사하였으므로, 남은 두 신학생만이 훌륭히 학업과 성덕을 닦았으나 나이가 25세에 이르지 못하여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무렵 파리 외방 선교회가 조선 교구를 담당하여 주교와 신부를 조선에 입국시켜 전교하고 있는 중이었으나, 조선이 외국과 수호조약을 맺지 않아 종교자유가 없었음으로 프랑스 루이 필립 왕이 파견한 함대의 세실 제독이 그 계획을 실행하겠다고 나섰다. 김대건은 세실 제독의 통역관이 되어 조선이 들어갈 메스트르 이 신부와 함께 에리곤 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세실 제독이 갑자기 조선 항해를 중지하게 되어 김대건은 혼자 육로로 본국에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변문에 이르러 조선 사절단의 일원인 김 프란치스코를 만나 본국 소식을 자세히 듣게 되었는데, 성직자를 비롯하여 아버지와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국을 서둘러 그해 12월 29일 혼자 의주 변문을 거쳐 입국하였으나 중도에서 본색이 탄로날 위험이 생겨 다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김대건은 백가점(白家店)과 소팔가자(小八家子)에 머물며 메스트르 신부로부터 신학을 배우고,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고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다시 입국을 시도하여 고 주교와 함께 변문으로 왔으나 김 부제 혼자만 1월 15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1845년 4월 주교와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상해에 갔다가 그 해 8월 17일 그곳의 김가항(金家港) 성당에서 페레올 고 주교 집전으로 사제품을 받아 조선교회의 첫 사제가 되었다. 이어 8월 24일 상해에서 30리 떨어진 횡당(橫堂) 신학교 성당에서 다블뤼 안 신부의 보좌를 받으며 첫 미사를 집전하였다.
같은 달 31일 고 주교와 다블뤼 안 신부를 모시고 라파엘호라 명명한 작은 목선을 타고 상해를 출발하여 1845년 10월 12일에 충청도 나바위라는 조그마한 교우촌에 상륙하였다. 김 신부는 선교활동에 힘쓰는 한편 만주에서 기다리는 메스트르 이 신부를 입국시키려고 애썼으나, 의주 방면의 경비가 엄해서 고 주교는 바닷길을 알아보라고 지시함으로, 백령도 부근으로 갔다가 순위도에서 1846년 6월 5일 밤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김 신부가 황해 감사 김정집의 심문에서 자신은 조선에서 출생하여 마카오에서 공부했음을 토로하자 황해도 감사는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이 사건의 중대성을 인식하여 중신회의를 열고 서울 포청으로 압송케 하였다. 일부 대신들은 김 신부의 박학한 지식과 외국어 실력에 탄복하여 배교시켜 나라의 일꾼으로 쓰자고 하는 의견도 있고 해서 배교를 강요했으나, 김 신부는 도리어 관리들을 교화시키려고 하자 사학의 괴수라는 죄목을 붙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는 사제생활 1년 1개월만인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때 김 신부의 나이는 26세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참고자료
본당 공동체
본당 제반 행사시 만찬 및 기타 단체의 행사 후원
성모님을 본받아 봉사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러내며, 본당 내 여러가지 봉사활동
본당의 성소자를 위한 후원단체로서 영적 물적 기도를 바치는 단체
꾸르실료 교육을 받은 분들의 모임으로 꾸르실료 정신을 생활화하도록 격려하고 주님의 현존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
M.E. 주말 교육을 마친 부부로서 대화를 통한 행복한 부부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부부 일치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
파타마에서 발현한 성모님을 공경하며 곱비 신부를 통한 마리아 사제 운동의 다락방 기도 모임
전례가 더욱 아름답고 거룩하게 거행되도록 주일 미사 및 대미사 성가와 행사의 성가를 담당
미사 전례때 하느님의 말씀이 명확하게 전달되도록 하는 말씀 선포와 미사해설을 담당
제대 꽃꽂이를 담당하며 본당 행사의 기타 장식에 협조
지역의 노숙자 Shelter에서 음식 봉사와 밤샘 숙박 봉사를 지원하는 단체
본당의 장례 예식과 연도에 관한 모든 활동을 담당
미사와 그외 전례때 신부님을 돕는 제대 봉사 단체
62세 이상에 해당되는 교우들의 모임으로 매일미사책 주문 과 판매, 새 신자를 안내하는 단체
63세 이상에 해당되는 여교우들의 모임으로 기도를 통한 친목도모와 타 단체 협조
51~62세에 해당되는 교우들로서 미사 안내 및 피정 주관과 본당의 일을 협조하는 단체
41~50세에 해당되는 교우들로서 한국학교 후원 골프대회와 헌금 정리 협조
31~40세에 해당되는 교우들로서 도서실 운영 및 대건 빈첸시오회의 코인 모으기 협조
30세 이하 및 이상의 미혼 교우로서 성경 공부 및 친목 도모
본당 어르신들의 인격 고양과 행복한 노후 생활을 위한 교류 프로그램
유치원~12학년까지 해당되는 본당 교우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통하여 하느님을 찬미하여 닮아 갈수 있는 인성을 길러줌
유치원~SAT반까지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며 자녀들이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고취하는데 주력
'거룩한 독서'를 교재로 사용하며 소그룹으로 나누어 기도하며 묵상하는 모임
예비 신자들이 세례 성사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한국어 및 영어 교리 지도
매 주일 오후 2시
매주 목/토/일요일에 팀별로 친선 도모를 위한 게임
4월~10월기간 매월 세째주 주일 모임
매주 수/목요일 6:3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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