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신앙심이 약해지면 ‘미션’이란 영화를 봅니다. 높은 폭포 위에서 신부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 떨어지는 포스터로도 유명한 영화입니다. 그 장면은 영화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앞부분입니다.
원주민들이 신부의 머리 위에 가시관을 씌우고 십자가에 결박한 채 거세게 흐르는 강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고는 십자가는 아득한 폭포 밑으로 떨어집니다. 신부의 순교는 다른 신부의 순교로 이어집니다. 가브리엘 신부가 그 뒤를 따릅니다. 신부는 절벽을 오르기 전에 십자가 목걸이를 앞에 놓고 기도합니다.
나뭇가지를 꺾어 돌 위에 십자가를 세웁니다. 십자가에 입 맞추고는 작은 뗏목에 올라타 세차게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절벽 폭포 밑으로 들어갑니다. 수단을 입은 등엔 오보에 악기가 매어져 있습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폭포 물줄기를 맞아가며 험악한 절벽을 맨손으로 올라갑니다. 카메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폭포 물줄기와 까마득한 절벽을 오르는 신부를 멀리서 잡습니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가브리엘의 오보에’ 음악이 흐릅니다.
이 영화는 ‘나에게 주어진 미션은 무엇인가?’, ‘나는 그 미션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미션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것은 직업이 될 수도 있고 이 사회가 내게 맡긴 책무일 수도 있고, 교회가 내게 맡긴 직분일 수도 있습니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을 얼마나 정성을 다해 가르치는지 생각해 봅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는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들어오는 예술대학입니다. 나는 예술가가 지녀야 할 미션을 그들 가슴에 심어주기 위해 ‘예술과 빵’이라는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수업 첫 시간에 법정 스님이 애송하던 구절을 들려줍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고는 ‘거룩한 부르심(聖召, holy calling)’에 대해 설명합니다. “여러분이 ‘예술가가 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예술가가 되라’고 부르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완전히 반전됩니다. 숙연해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부르심은 간호대학 졸업식과 의과대학 졸업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간호대학에서는 강당의 모든 불이 꺼지면 맨 뒤에서 졸업생들이 한사람씩 촛불을 들고 입장합니다. 연단 가까이 와서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합니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그러면 학장은 졸업생 한 명 한 명에게 흰 캡을 씌워줍니다. 의과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졸업생들은 흰 가운을 입은 채 학장 앞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합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았으므로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합니다.” 이런 거룩한 의식을 통해 미션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에서도 이러한 거룩한 의식을 사제 서품식에서 봅니다. 주교님이 서품 대상자를 호명하면 큰 소리로 “예, 여기 있습니다”(탈출 3,4) 하고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앞으로 나갑니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찡’합니다. 나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크고 또렷하게 응답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합니다.
싱그러운 유월, 예수성심성월입니다. 이 좋은 계절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미션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지 묵상해보면 어떨까요?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