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6월 19일은 미국의 “노예 해방일(Juneteenth)”로 국가 공휴일이다. 1865년, 텍사스 갈베스턴에 도착한 연방군이 흑인 노예들에게 자유를 알린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자유의 나라’라는 이상을 향해 꾸준히 걸어왔다.
그러나 2025년의 노예 해방일을 맞이하는 미국은 역설적으로, ‘자유’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기로에 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시 불법 이민자 수백만 명을 ‘가장 크고 가장 빠르게’ 추방하겠다고 선언한후 요즘 무자비할 정도로 집행하고 있다.
LA 도시는 주 방위군과 무슨 전면전이 일어 난 것 처럼 시위대와 격돌하고 있으며 한인타운도 긴장의 연속이다. 마치 미국 전역에 벌집을 쑤셔 놓은 격이다.
그가 묘사하는 ‘불체자’는 범죄자이며,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된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상당수는 단순한 생계와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은 이들이며, 미국 사회의 저임금 노동을 지탱하는 이면의 존재들이다.
노예 해방일은 단지 흑인만의 해방을 기리는 날이 아니다. 그것은 이 나라가 얼마나 오랜 세월,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특정 인종과 계층을 억압해 왔는지를 기억하는 날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반이민 정서는, 과거 노예제도와 구조적 인종차별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때 ‘인간이 아니라 재산’으로 취급됐던 흑인들의 고통을, 지금은 ‘국민이 아니라 불법체류자’로 호명된 사람들에게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가?
트럼프의 추방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현실은 잔혹하다. 가족이 찢어지고, 직장을 잃고, 수용소에 갇히며, 심지어 시민권을 가진 자녀들도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된다.
추방 대상이 되는 이들은 대부분 유색인종이며,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진짜 미국인’이 아니라는 낙인을 받는다. 이 모든 과정은 마치 과거 노예제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이 자의적으로 판단되던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기독교 관점은 좀 복잡하다. 전통적인 신앙심보다는 정치적·문화적 정체성으로서의 기독교에 더 가까운 성격을 보인다. 기독교를 “미국 전통의 핵심” 또는 “서구 문명의 방어선” 으로 간주하며, 이슬람, 무신론, 진보주의 등을 위협 요소로 설정하고 있다.
특히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와 전략적 제휴를 형성하고 있다. 복음주의자들 중 일부는 그가 신실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그를 지지한다.
전통적인 기독교에서는 겸손, 용서, 자비가 중요한 가치이지만, 트럼프는 승리, 거래, 보복 등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는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어떻게 신앙의 본질을 변형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번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의 그림자에도 도널드 트럼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트럼프는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트럼프(Friedrich Trump)가 독일에서 이민 와 만하탄에서 이발사로 어렵게 일하며 오늘의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이루어 내게한 자신의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 Roland Paul에 의하면, Friedrich Trump는 독일에서 병역을 기피하기 위하여 1885년 무단으로 미국으로 건너왔으나 불법으로 인정되어 다시 독일로 쫓겨났으며, 독일에서도 병역 기피자로 퇴거 명령을 내려 결국 미국에서 오랫동안 불법체류 후 1892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다는 조상의 파란 많은 역경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진정한 하나님의 성전에서 울려 나와야 한다. 신명기 28장 1절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고 한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 글쓴이의 허락을 받고, 한홍기님의 Facebook에서 옮겨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창환 부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