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02. 옥잠화 필 무렵

류정호(테레로사, 차<茶> 문화 연구가)
류정호(테레로사, 차<茶> 문화 연구가)

여름 한낮의 해가 지고 어스름 깔린 골목 어귀에서 장사 간 엄마를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함께 놀던 동무들은 집으로 가고 신작로까지 엄마 마중 갔다가 혼자 털레털레 돌아오니 골목 머리에 하얀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이웃집 할머니가 까만 옥수수 삶은 물같이 불그레한 고무통 가득 채운 진흙에서 피워낸 꽃이었지요.

꽃내음이 말도 못하게 향기로웠습니다. 백합 향기 비슷하게 삽상하고요, 먼 종소리같이 제 가슴을 토닥토닥 어루만지는 듯도 했어요. 한참 쭈그려 앉아 쥐가 오른 다리를 살살 저어 몇 발짝 돌아나면 하얀 꽃은 향기로 따라다니는 것이었어요.

백합처럼 생긴 꽃이 낮에는 입을 야물게 다물어 할머니의 쪽진 머리에 꽂은 비녀 같았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하얀 꽃이 옥비녀꽃, 옥잠화라는 걸 알았지요. 그때부터 꽃은 생긴 대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수십 년이 흘러도 하얀 옥잠화는 여름이 저물어갈 무렵이면 어릴 적 동무처럼 피어납니다. 옥잠화 꽃무리를 찾아 동네 뒷산에 올랐습니다. 산기슭 습지가 온통 옥잠화 하얀 꽃밭입니다. 하느님은 가는 여름과 오는 가을 사이 계절의 골목 꽃으로 옥비녀꽃, 옥잠화를 나무 그늘 곳곳에 심어 주셨나 봅니다.

아직 해가 남아서인지 옥잠화는 순결한 빛무리로 침묵 중이었습니다. 입을 꼭 닫은 옥비녀 곧은 꽃대를 세우고 있었지요. 해가 지고 한낮의 뜨거운 기운을 깊은 숨으로 토해낼 시각이면 옥잠화는 먼 종소리 같은 향기로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지켜봐 온 옥잠화는 해가 뜨면 피어나는 여느 꽃들과 달리, 해가 뜨면 입을 닫고 해가 져야 꽃잎을 열었습니다. 단단히 봉했던 입을 때가 되어야 여는 꽃이 옥잠화입니다.

정약용은 신유박해로 유배 간 강진에서 “내가 꽃을 기르는데, 매번 꽃봉오리가 처음 맺힌 것을 보면 머금고 온축하여 몹시 비밀스럽게 단단히 봉하고 있었다. 이를 일러 함장(含章)이라고 한다. 식견이 얕고 공부가 부족한 사람이 겨우 몇 구절의 새로운 뜻을 알고 나면 문득 말로 펼치려 드니, 어찌 된 것인가?”라고 전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남에게 질세라 뜻도 모른 채 입을 열어 떠들고, 빈말, 헛말이 난무한다고 따끔한 질책도 더 했지요.

저는 가톨릭의 보편적인 가치와 엄숙하고 고요한 전례에 이끌려 세례를 받았습니다. 신자들과 친교를 나누게 되면서 ‘상처’라는 말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쓰이는 걸 보았습니다. 세상의 그늘을 치유하러 찾아온 성당에서 상처라는 말을 쉽게 주고받는 것 같았어요.

공동체에서 남에게 질세라 입을 열고, 조금만 알아도 말로 펼치려 하고,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듯 말, 말, 말이 범람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남에게 질세라 입을 열고, 말로 펼치려 들고,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하는 사람은 바로 저였던 것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 7,3)는 말씀대로 제 눈에서 먼저 들보를 꺼내야 할 위선자였던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상처를 준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의 범람과 상처를 운운하다니요.

산 그림자 검게 드리우자 옥잠화 꽃무리가 하얀 숨결을 내뿜기 시작했습니다. 피어날 때를 기다렸다 피어나는 꽃은 향기가 지극합니다. 가만히 듣는 일도 어려운 이때, 함장(含章)의 꽃 옥잠화의 침묵을 배울까 해요. 때를 기다렸다 피어나는 옥잠화 꽃을 계절의 길목마다 심어 주신 하느님께 찬미 드립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