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성당은 모자원 고개에 있습니다. 신자들은 성당으로 가는 두 갈래 중의 한 길을 ‘깔딱고개’라고 부릅니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이 가팔라 숨이 깔딱 넘어간다고 붙인 말인가 해요. 깔딱고갯길에 무궁화 꽃이 천연스레 피어 있고, 무궁화 꽃 그늘에서 숨을 고르는 어르신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집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 발 한 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놀이하던 옛 추억을 떠올리시는 걸까요.
무궁화 꽃이 피고 지는 여름 막바지에 본당 홍보분과장의 소임을 마쳤습니다. 지난 4년간을 떠올리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가 새삼 놀이만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눈을 감은 술래가 벽을 보고 ‘무궁화 꽃이…’를 외치다 고개를 돌릴 때 동무들은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다시 ‘무궁화 꽃이 …’를 외치는 동안 동무들은 내 등 뒤로 바짝 다가왔습니다.
오랜 냉담을 풀고 성체를 영하면서 당당한 신자가 된 10년 전, 미사 때마다 강론 말씀이 다디달았습니다. 그런데 햇살같이 다독이는 성경 말씀 중에 ‘오병이어’의 기적은 마음 한구석에 의문으로 남았어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의 사람이 먹고 또 남을 수 있다니….
아둔한 제 머리로는 터무니없는 기적이었지요. 그러다 본당의 크고 작은 행사에 함께하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봉사자들의 손과 발이 빵 수천 개와 물고기 수천 마리를 만들더군요. 어디 그뿐입니까. 봉사를 받은 신자들도 받은 만큼 또 누군가에게 나누고요.
애초에 없던 길도 사람들이 오가면서 만들어진 것처럼 나눔도 그러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곤 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그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성경은 머리로 이해하는 책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만드신 사람은 모습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숨결은 사람의 마음결까지 그렸습니다. 마음이란 기적을 품는 오병이어의 텃밭이었습니다.
4년 전 본당에 홍보분과가 신설되고 분과장으로 임명받은 후, 주임 신부님의 제안으로 소식지 ‘동행’을 만들었습니다. 그토록 하고자 했던 봉사의 길도 막상 깔딱고개였습니다. 새벽녘까지 책상에 앉아 있을 때가 수두룩했고요. 광고가 생각만큼 들어오질 않아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들어온 글을 다듬으며 내 일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인 적이 있었던가 하면서 생색내기도 바빴습니다. 디자인이 제시간에 나오질 않아 머리가 우지끈거렸고, 자잘한 푸념을 드러내어 불편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소식지 발행을 두 번이나 건너뛰는 사정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니 생색내기와 푸념의 깔딱고개 같던 ‘동행’이 실은 ‘오병이어’의 현장이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신자들과 함께 나누고 걸어가는 이야기를 엮어내던 ‘동행’은 이름대로 모든 분의 손과 발이 동행한 기적이었습니다.
글을 부탁해도, 대담을 청해도 흔쾌하게 응해 주셨고, 제작비가 모자라도 발행일을 맞춰 신자들 손에 ‘동행’이 들렸습니다. 편집장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다 불러 하느님께 아뢰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도 새벽녘까지 글을 다듬던 저와 동행하셨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호를 외칠 때 제 등 뒤에서 웃고 있던 동무같이 말입니다.
없던 길도 사람들이 오가며 만들어낸 것처럼 희망도 다져야 이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희망을 품게 해주신 하느님은 언제나 저의 술래이신 오직 한 분입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