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인근 다른 본당에서 봉헌된 장례 미사에 다녀온 적이 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 안드레아 형제의 장례 미사여서 다른 약속도 제쳐놓고 급히 다녀왔다.
그렇다고 안드레아 형제와 이렇다 할 안면이 있는 건 아니었다. 따뜻한 인사도, 깊은 대화도 나눈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 깊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당에서 필요할 때면, 그는 언제나 꼭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는 묵묵히 일하고, 일이 끝난 뒤에는 사용한 연장이며 쓰레기를 자루에 담아 작은 트럭에 싣고 조용히 어디론가 가버리곤 했다. 레지오 마리애 꾸리아 행사 때도, 다른 지역 봉사 때도 그는 한결같았다.
연말이면 성당에서 어려운 이웃에게 보내는 쌀 나눔 대상자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미뤄 형편이 어려웠던 것만 짐작할 뿐이다. 늘 싱긋 웃고 있는 데다 평소 말수가 많지 않아 나로서는 그의 목소리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때는 일 하러 나가기 전, 또는 일을 다녀와서는 온종일 성당에서 살다시피 했다. 성당의 온갖 허드렛일부터 수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는 곳은 언제나 깔끔하게 변해 있었다. 언젠가는 한 번쯤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나누고 싶었지만 본당이 분가하면서 그냥 헤어지고 말았다. 새로 지은 성당에서는 안드레아 형제 덕에 별도로 관리인을 둘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미사를 집전하시던 신부님도 말을 잘 잇지 못했다. 본당 전체가 충격에 빠진 듯했다. 그럴 정도로 그는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봉사의 의미와 감동을 안기고 세상을 떠났다.
또 한 분,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가 있다. 분당 성 마태오본당으로 전입해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본당에서 우연하게 남성 소공동체 일을 맡게 됐다. 사실 이사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성당 파악도 덜 된 상태라 많이 망설였지만, 많은 사람이 책임지기를 사양하는 터라 어쩔 수 없이 맡게 됐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소공동체 활동은 고사하고 모임을 조직하는 일 자체만도 어려웠다. 그때 정 암브로시오 형제가 다가왔다. 이 분은 분당 성 마태오본당에서 초대 사목회장을 역임한 분인데, 연세도 많으셨다.
이 분이 그때까지도 미진했던 당신 지역 형제회를 조직하고 회장직을 자청하고 나서는 바람이 일이 풀렸다. 지역 소공동체 회장 임명장 수여 때는 교우들의 많은 박수와 축하를 받았고, 나와 함께 지역을 돌면서 형제회 조직에 필요한 많은 도움을 줬다. 그리고 당신 형제회도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 후임자에게 물려줬다.
스스로의 위치를 비우고 그 안에 자기 희생을 채워넣는 참된 봉사의 길을 걸어간 이 두 분을 난 요즘도 잊지 못한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봉사자들의 자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봉사자들도 마찬가지로 품위가 있어야 하고,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않으며, 술에 빠져서도 안 되고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1티모 3,8-9)
정직과 절제, 그리고 신뢰를 뜻하는 내용이다. 그러고 보면, 봉사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특히나 형편이 여의치 못해 봉사직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봉사자들을 도우며 함께하는 것도 또 다른 의미의 중요한 봉사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