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5월의 일이니 벌써 30년도 넘었다. 당시는 때마침 불어닥친 민주화와 함께 노동조합운동의 열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때였다.
그즈음 나도 경북 구미에 새로 지은 신설 공장에 전근됐는데, 구미 지역 또한 노사분쟁이 하루가 다르게 격렬해졌다. 우리 회사 또한 ‘걱정 속에서’ 토목 공사를 끝내고 기계를 막 설치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같은 공단에서 근무하던 계열사 사장이 “이곳은 신부 한 사람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한다”고 말을 꺼내는 게 아닌가? 그 신부님이 노조를 부추겨 괜히 문제를 만든다는 식이었다. 그러자 함께 있던 우리 회사 사장이 “신부님들이 그럴 리가 있나? 현실 타협은 잘 안 하는 분들이지만, 그분들 꽤 합리적이지” 하더니, 곁에 있던 내게 “자네, 천주교 신자잖아. 한 번 알아봐!”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난 하는 수없이 그 신부님이 사목하는 구미 원평성당 주일 미사에 가게 됐다. 문제의 신부님(?)이 지금은 대구가톨릭대 영성 담당으로 계시는 허연구(모이세) 신부님이다. 미사를 봉헌하러 성당에 들어가니 회중석 내부 통로는 물론 제대 앞까지 빼곡하게 신자들로 가득 차 있어 영성체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당시 강론 내용은 아직도 기억에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우리가 힘든 이웃을 봤을 때 외면하는 건 합당치 못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도와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이든.”
허 신부님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은 노조이든, 경영자이든, 관공서 공무원이든 대화로 이끌었다. 긴장이 높아가고 갈등이 커져도 어떻게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갔다.
당시만 해도 열악했던 복지 부문 개선을 요청하는 노조의 의견을 대체로 들어줘야 하는 경영자들 처지에서 보면 그다지 바람직한 결정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쨌든 대화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했다. 서로 양보하도록 했고, 결국은 형평에 맞게 잘 마무리됐다.
이후로 세월이 흘러 한적한 독일의 시골 마을을 지나게 됐다. 마침 많은 사람이 잔디밭에 모여 앉아 난상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독일 사람들은 자신의 마을 문제나 지역 현안이 발생하면, 그때마다 모여 꼭 난상토론을 거친다는 것이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논의를 거친 뒤 지역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이 설령 부족하고 모두가 만족하지는 않더라도 한번 결정한 내용은 다들 따르는 것이 관행이라고 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이후에도 독일에 갈 때마다 자주 이런 모습을 보게 됐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갈등 해결률이 ‘25%’ 수준이라는 경제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아주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짧은 민주주의 경력에 급격한 경제발전에서 오는 이기주의 때문으로 분석되기도 하고, 조급한 결정에 따라 빚어지는 문제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토론과 대화, 화해를 통해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분쟁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어 노사가 모두 선호하는 방법이다. 갈등 비용을 최소화하고 노사 분쟁을 조기에 종결시킬 수 있는 장치가 바로 토론과 대화, 화해인 셈이다.
최근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갖게 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폐교된 학교에 장애인특수학교를 건립하겠다는 서울시교육청 방침이 지역사회에서 토론을 통한 타협점을 찾지 못해 표류 중이라는 보도를 보면서 마음이 몹시 아팠다. 지역 이기주의를 벗어나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합리적 판단과 결정을 내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성숙한 사회, 포용적 자세가 너무나도 아쉽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