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17. 특별한 은총

고종희 (마리아, 한양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 미술사가)
고종희 (마리아, 한양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 미술사가)

누구나 한 가지 재주는 있다고 하였는데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을 허락하신 것 같다. 나는 몇 권의 책을 냈는데 그중에서 「명화로 읽는 성인전」은 주님께서 주신 가장 큰 은총이자 십자가다. 당시 본당 주임 신부님이셨던 방 신부님께서 감수를 해 주셨고, 최근에는 양 신부님께서 세부적인 오류를 다시 잡아 주셨다.

7년에 걸쳐 이 책의 원고를 쓴 후 이스라엘 여행을 혼자 떠났는데 밤에 교정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탈고한 원고를 들고 갔었다.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갈릴레아 호수, 나자렛 마을, 헤로데가 건축한 지하 벙커와 원형극장, 바오로가 2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는 카이사리아 바닷가에 세워진 빌라도의 비석 등은 그동안 나에게 소설 속 주인공 같았던 예수님이 현존하시는 인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교정 작업에만 2년이 더 걸렸는데 성인들의 삶에 관한 내용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책 전체의 틀이 하느님의 현존으로 ‘리셋’되었다.

성인들은 하느님을 만난 분들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고통의 삶을 선택했다. 물론 신학 연구를 통해 교회의 틀을 다진 학자 성인들도 많다. 하느님을 만난 그들에게 신앙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었다. 신자인 우리는 성인들의 삶을 알아야 하고, 알면 사랑하게 되며, 사랑하면 따라 하고 싶어진다.

「명화로 읽는 성인전」에서 언급한 그림이나 장소를 대부분 가서 보는 은총을 누렸다. 수백 점이 넘는 그림과 장소를 직접 가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주님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중 미국과는 별 인연이 없던 내가 아들과 함께 엘리사벳 시튼(1774~1821)의 성지가 있는 미 동부의 에미츠버그라는 시골 마을을 찾아갔던 일을 잊을 수 없다.

고속도로에서 나와 시튼로(Seton Avenue)라는 표지판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지금부터 200여 년 전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미국 최초의 성녀 엘리사벳 시튼은 가녀린 몸으로 마차를 타고 피신하다시피 그 길을 지나 에미츠버그에 도착하여 시튼 수녀회를 설립한 것이다. 남북전쟁이 일어났던 게츠버그와 멀지 않은 곳이다.

예수님, 성모님, 요셉 성인이 사셨던 나자렛의 성가정 집(Santa Casa)을 이탈리아로 옮겨놓은 로레토(Loreto) 성지도 잊을 수 없다. 이탈리아인 관광버스 기사와 고등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이탈리아 교사 친구에게 주요 성지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두 사람 다 1순위로 로레토를 추천했다.

가서 보니 관광객들이 대부분인 유명 성지와는 달리 전국 각 지역에서 모여든 순례객들과 환자들이 대성당 광장을 가득 메웠으며 밤에는 이들 순례객들이 마을 골목을 촛불을 들고 행렬하는, 신앙이 살아 숨 쉬는 성지였다. 나자렛에 있던 예수님의 집을 십자군 전쟁 당시 군인들이 벽돌을 옮겨와 이곳에 복원하였다고 하니 이보다 귀한 성지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곳의 미술관 2층의 깊숙한 곳에서 나의 책 「명화로 읽는 성인전」에 실었으나 직접 보지는 못했던 로렌초 로토의 ‘성 크리스토포로’를 우연히 발견하는 은총을 베푸셨다. 하느님께서는 왜 나에게 이 같은 은총을 허락하실까?

‘가서 보고 똑바로 전하라!’는 명이 아니실까? 이 책이 나에게 은총이자 십자가인 이유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