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따라, 나이 탓인가. 치아가 부쩍 약해졌다. 오늘 아침에도 오래 미뤄뒀던 임플란트 고정을 마저 하려고 치과에 들렀다.
벌써 20년 가까이 다닌 곳이라, 이젠 의사 양반도 내겐 거의 친구나 다름없다. 나보다 한참은 젊은 사람인데, 그래도 세월이 쌓이니 서로의 생애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에게는 대학 시절부터 가까이 지낸 친구가 하나 있다. 한국에서 이름난 치대의 교수였는데, 종종 미국에 놀러 올 때마다 꼭 나와 짝을 지어 골프장에 내보냈다.
덕분에 그 교수도 어느새 내 친구가 되어버렸다. 요즘은 정년 퇴임하고, 어느 보건소인지 원장 자리를 맡아 그럭저럭 밥벌이는 하고 있다고 한다. 마누라 눈치 안 보고 사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요즘도 골프 자주 나가세요?” 진료 준비를 하면서 그가 물었다. 아마 또 이번에도 교수 친구가 오면 낮 시간 내게 맡기려는 게 아닐까, 속으로 이번엔 허리때문에 겁부터 났다.
“요즘은 그렇게 자주 못 나가요. 일주일에 서너 번? 그냥 재활이죠, 재활. 허리도 안 좋고요.”
“그렇죠. 그냥 걷고 움직이고. 근데 라운딩 끝나면 친구들이랑 주로 무슨 얘기 해요?”
“별 얘기 없어요. 정치 이야기는 꺼낼 수 없고… 요즘은 프로 선수들 얘기나 하죠.” 그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정치 이야기 잘못 꺼냈다간 친구도 갈라서지요.”
“그러게요. 눈치 보며 같은 편일 땐 몰라도, 반대편이면 그냥 개거품을 물어요. 아예 말도 못 꺼냅니다.”
그가 이빨 속을 다듬으며 한참 손을 놀리다가 다시 말을 건넸다.
“그 교수님 말로는, 요즘 한국은 정치 얘기하다가 이혼하는 부부도 있다네요. 정치 성향이 다른 부부가 늘었다나 뭐라나…”
“허허, 그거 참… 나도 집에서 한마디 잘못했다가 밥상 뺏길 뻔했어요. 대통령이 별로라고 한마디 했다가, 그날 저녁은 알아서 해먹으라더군요. 우리 집은 한국 정치, 미국 정치 다 갈라져 있어서, 쌍 겹으로 위험해요. 티비 보면서도 입이 근질거리는데, 밥 못 얻어먹을까봐 그냥 눈뜬 봉사처럼 있죠.”
그가 킥킥 웃더니, 교수 친구 이야기를 또 꺼냈다.
“그 교수는 명절에 딸자식이 오고, 사위, 며느리까지 오면 무조건 금언령을 내린대요. ‘정치 얘기 금지. 대신 고스톱이나 쳐라’ 이거죠. 집안 종교도 난리라네요. 기독교, 천주교, 불교 다 섞여 있다나.”
“종교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진짜 위험해요. 한마디 잘못하면 칼부림 납니다. 나도 목사님 험담했다가 밥상 걷힐 뻔했어요. 그 교수님, 정말 현명하신 겁니다. 고스톱으로 끝내는 게 답이에요.”
“그 교수님, 올해는 안 오신대요?”
“곧 올 걸요. 선생님이 친절하시다고 늘 이야기해요. 아마 다음 달쯤? 지금 같이 사진 한 장 찍으시죠. 보내드리면 무척 좋아하실 겁니다.”
나는 진료대에 누운 채로 셀카를 한장 찍혔다.
이번에 교수 친구와 라운딩을 나가게 된다면, 꼭 슬쩍 얘기 하나 흘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진료비가 예전 같지 않네요. 트럼프 때문인지 물가가 올라서 그런가 봐요.” 중간 홀쯤에서 툭 던져볼 생각이다. 설마 그가 트럼프 가지고 시비를 걸겠나. 나도 이제는 Baby Sitter 비용쯤은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끝)
(글쓴이의 Facebook에서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