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26. 봄맞이 앓음

김숙경(크리스티나, 시인)
김숙경(크리스티나, 시인)

 

봄을 맞이하는 독백의 소회를 담은 나의 제 2시집 「인생」 첫 페이지에 실린 졸시로 인사드리며.

소리치는 봄

창밖에서 토악질하는 / 저 저 / 생존을 찬미하는 자존심 / 나와서 봐 / 내 말은 / 다시 살아 일어서서 보란 말이지 / 이 질긴 얼굴에 저 부드러운 눈빛에 / 보지만 말고 만져 보란 말이야 / 그립다 외롭다 / 보고 싶다 외치지만 말고 / 시샘하듯 피어나는 저 붉음에다가 / 노랑의 눈부신 미소를 아끼지만 말고 / 분홍의 아찔한 감미로움에다 / 다시 살아 일어서서//

지난 12월의 초입. 온 세상이 화려한 원색으로 채색됐던 아름다운 만추의 서정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로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가 왔다.

겨울 문턱을 막 넘으려는 순간에 기온은 급하게 수직 하강했다. 그래서일까 스치는 짧은 만남에도 빠뜨리지 않고 건네는 인정어린 당부가 감기 조심하라는 인사말이다. 추위의 맹위는 참으로 대단해서 감기는 나이를 뛰어넘는 공통의 화두가 됐다. 오늘 하루가 생명력이 가득한 희망의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기원하는 아침의 기도.

창밖으로 보이는 청명한 풍경과 밝은 햇살의 온기를, 밤하늘의 별들이 선명하게 반짝여서 낭만이 깃든 대화를 무시로 나눌 수 있기를. 매체를 통한 뉴스 보도가 인정 넘치는 나눔과 배움과 지혜의 장으로 바뀐다면 미세먼지가 심각하게 호흡기를 위협하는 복잡한 이 세상에서 이런 상상은 그저 몽상가가 그리는 헤픈 꿈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의 주어진 시간이 무위하게 방류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며 이러이러함에 대해서는 잘못이었음을 고백하며, 또 이러이러한 것에서는 깊은 감사지정으로 감읍하고 있음을 고하는 기도의 저녁.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하루의 시간에게 늘 면목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생활 속 되풀이되는 타성이 그것이다. 아니 변화하려는 의지가 약한 나태한 본능 때문일 것이다.

자기 성찰의 묵상에 잠기는 기도 시간은 짧아지고 채널을 바꿔가며 텔레비전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현상. 이를테면 인생 여정에서 온갖 시련을 겪은 이가 복잡한 사회와 인연의 고리를 초월하여 깊은 산 속에 둥지를 틀게 된 사연을 다룬 프로그램이 있다.

역경의 후일담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자기 고백이 담겨 있고 약초 캐기와 깊은 산중에서 방문자와 함께 끼니를 해결하는 과정과 현상을 다룬 이야기. 여러 케이블 채널로 연일 또는 시간대를 달리해서 반복적으로 재방송됐다.

나는 수술 후 신경 손상으로 인한 하지 통증에다가 설상가상으로 시작되면 거의 발작적으로 멈출 줄 모르는 기침을 해대는 지독한 감기까지 더해졌다. 아예 전화 통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목이 붓고 소리가 잠겼다. 어찌하지 못한 채 사람들로부터 스스로 격리되었다.

한시적 단절의 상태. 상실감일지 모르겠지만 마치도 TV에 방영되는 산속 그 현장에서 자연인을 관찰하고 나 자신이 관찰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함은 매번 나의 눈과 귀와 시간을 붙잡는 것이다. 한가하고 풍광 좋은 느린 이야기에 꽂혀 보고 또 보다 보면 많은 시간이 하릴없이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달포가 훨씬 지나도록 그치지 않는 기침과 콧물과 지병이 돼버린 하지 통증과 불면증과…. 자연 속 사람의 얘기에 눈을 고정시킨 채 시간을 방류하는 앓음의 오케스트라가 따로 없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