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파리에서 최고연주자 과정까지 5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2009년 여름 귀국했다. 2010년 새 학기부터 예술 중ㆍ고등학교와 대학교 출강, 그리고 오케스트라 수석을 맡게 되면서 한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창시절부터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큰 무대에서도 관객 한 분 한 분의 표정과 반응이 느껴져 관객들과 교감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연습 시간이 충분치 않은 연주를 제외하고는 내게 주어지는 기회들을 마다치 않았다. 현재 단장을 맡은 플레이어즈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기 전까지, 2010년 귀국 독주회를 시작으로 2011년과 2014년, 2015년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했다.
그 와중에도 1년에 두세 번 오케스트라 협연과 실내악 연주, 독주 등 두 달에 한 번꼴로 연주했다. 이후 현재까지도 똑같은 연주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연주들 외에도 다른 일들이 많아지면서, 연주 전날까지 밤을 새워 연습하는 일이 이제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독주회 준비를 하는 동안 문득 내 탈렌트가 도움이 필요한 곳에 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에서처럼 성당에서 하는 기금 모금 독주회가 의미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2014년 11월, 서울대교구 청담동본당으로부터 연주 요청이 들어왔다. 2014년 독주회가 12월이었고, 2015년 독주회가 7월에 잡혀 있었다.
성당 연주는 독주회 두 달 전인 2015년 5월이었다. 연주자에게는 무척 부담스러운 일정이었다. 심지어 그해 독주회는 바이올린 협주곡, 마림바 협주곡, 클라리넷 협주곡, 첼로 협주곡들을 직접 플루트 협주곡으로 편곡할 계획이었기에 다른 연주 계획은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좋기만 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 나는 기쁜 마음으로 준비했다. 내가 바라던 성당에서의 첫 독주회였다.
나는 성당 독주회를 이어가고 싶었다. 프로그램에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하는 독주회 시리즈’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연주회 중간에 신부님께서 신자들에게 프로그램 해설과 간단한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플루트와 기타, 플루트와 마림바, 플루트와 피아노, 플루트와 장구 등 여러 선생님과의 리허설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다양한 악기 소리를 들려드리고자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그렇게 시작한 독주회 시리즈는 2017년 6월, 두 번째로 나의 본당인 수원교구 보정성당에서 이어졌다. 한센인 안식처 후원 연주회였다. 모금액 전액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쓰일 수 있도록 전부 ‘영보 은혜의 집’에 전달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신부님의 해설로 인해 신자들의 호응도가 더 높았던 것 같다.
올가을, 세 번째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하는 독주회 시리즈’를 준비해보려고 한다. “내가 있다는 놀라움, 하신 일의 놀라움, 이 모든 신비들, 그저 당신께 감사합니다.”(시편 139,14)
나는 오늘도 음악으로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도구가 되기를 기도한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