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소아마비 지체장애로 척추가 휘어 있다. 오래 앉아 있으면 측만증으로 인한 통증이 심해져 계속 자세를 바꾸거나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물론 눕는 것이 가장 좋긴 하다.
이런 나에게 미국 시카고의 한 교회에서 강연 요청이 왔다. 작은 북카페를 만들었으니 와서 개관기념 특강을 해 달라는 거다. 모처럼의 해외 강연이라 가슴이 설레었다. 하지만 이내 떠오르는 염려는 시카고까지의 길고 긴 비행시간이었다. 엄두가 나질 않았다. 비좁은 자리에서 굽은 허리로 13시간을 버텨야 한다니. 비장애인들도 쉽게 견디기 힘든 고통의 여행이 될 게 뻔했다. 어쩌면 좋을까. 전전긍긍하는데 표까지 오고 말았다. 꼼짝없이 가야 하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애인의 여행 시 항공사는 가급적 맨 앞좌석을 지정해 준다. 조금이라도 넓은 좌석을 배려해준다는 뜻이다. 출국하기 전 나는 기도를 했다. 편하게 갈 수 있게 도와달라는 간절한 기도였다. 최소한 옆자리에 사람은 앉지 않게 해주길 바랐다. 그렇게 되면 옹색하게나마 모로 누워서 갈 수 있다. 그나마 피로가 덜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공항에 도착해 자리를 배정받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 교회 측에서 티켓 구매 시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미리 말하지 않았던 거다. 30번대의 비좁은 뒤쪽 자리를 주는 것이 아닌가. 낭패였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혹시 옆자리를 비워 줄 수 있느냐고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물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다더니. 애석하게도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오 마이 갓! 얍삽하게 나의 편안함, 안락함을 기도한 것이 말짱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길고 긴 여행길에 고생을 각오했다. 모든 걸 내려놓았다. 하느님도 너무하시다는 원망이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반성도 했다. 평소에 기도도 별로 열심히 하지 않던 나 아닌가. 비행기 타고 갈 때 되니까 간절하게 요행과 복을 비는 건 뭐였나. 부끄러운 마음을 간신히 놓아 보냈다. 조금 편안해졌다. 기내에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 등지에서 온 승객들이 가득했다. 허브인 인천공항에서 한 비행기에 모두 섞여 탄 거다. 정말 빈자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장기전에 돌입하려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의자가 뒤로 젖혀졌다가 바로 원상복구가 되어버렸다. 버텨보려 했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출발한 지 두어 시간 만에 승무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의자를 고쳐 보려고 손보던 사무장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자리로 옮겨주겠다고 했다. 만석이라더니 비상용으로 자리 비워 놓은 곳이 있다는 거다. 기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 보니 이게 웬일인가! 연이은 좌석 세 개가 주인 없이 날 기다렸다. 통째로 비워져 있는 게 아닌가. 승무원이 마음껏 누워 가란다. 알렐루야!
덕분에 나는 가는 길 내내 누웠다가, 잠들었다가 하며 아주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영화도 두 편이나 보았다. 콧노래가 스멀스멀 나오니 이보다 기분 좋은 여행이 언제 있었던가 싶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참으로 간사하게 나는 감사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무사히 미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 시카고 오헤어 공항으로 갔다. 이번엔 좌석 문제 따위로 복을 비는 기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알아서 다 해주시든지 말든지 처분에 맡긴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저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것에 흡족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동안 복을 바라며 기도하던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던지.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300명 넘게 타는 비행기의 승객이 고작 100여 명. 모든 승객이 각각 세 자리씩 넉넉하게 차지하고 누워 잠을 청했다. 돌아오는 여행 역시 아주 편안했다. 앞으로는 무엇을 바라며 복이나 이익을 비는 기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