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와 일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나 쐬자고 가까운 절에 들렀습니다. 절 들머리에 300억 원을 들여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을 만든다는 현수막이 자랑스럽게 붙어 있었습니다. 돈을 기증한 사람 이름과 주소까지 붙여 놓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나무 한 그루보다 못한 것이 300억 원이라니, 흐르는 개울물보다 못한 것이 300억 원이라니….’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종이 아무리 웅장하다 해도 마을 뒷산보다 웅장하겠는가. 십자가가 아무리 높다 해도 밤하늘 별보다 높겠는가. 음악 소리가 아무리 은은하다 해도 풀벌레 소리보다 은은하겠는가. 황금이 아무리 빛이 난다 해도 연둣빛 새순보다 빛이 나겠는가. 사람이 아무리 잘났다 해도 나무 한 그루보다 잘났겠는가. 자연이 곁에 있어 사람이 살아가는 것인데….’
산골 농부로 살다 보니 도시에서 살 때는 보이지 않던, 어쩌면 보려고 마음조차 먹지 않았던 제 어리석고 못난 모습이 하나둘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모두 자연에 기대어 사는 것인데, 자연을 모르고 살면서 ‘자연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다’고 떠벌리며 다녔습니다.
스승의 스승의 스승이 자연이란 말도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알아듣고 살았습니다. 더구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도 그저 입으로만 중얼거렸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도시에 살 때는 옆집이나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이웃을 집에 초대해 밥을 함께 나눠 먹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모르는데 어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아주 큰 성모유치원에서 부모 강의를 간 적이 있습니다. 100명 남짓 모인 어머니들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가까운 이웃을 집에 초대하여 밥을 나눠 먹어 본 사람이 있으면 미안하지만 손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그랬더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40대쯤 보이는 어머니 한 분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여기 나온 까닭은요.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까 신앙인으로서 하도 부끄러워서 나왔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요.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앞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밥을 나눠 먹으려고 문을 두드린 것이 아니라 바퀴벌레 때문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하도 우리 집에 바퀴벌레가 많아서요. 아파트 경비실에 찾아가 물었더니 앞집에 사는 분들이 맞벌이 부부라 공동 소독을 할 때마다 늘 빠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앞집 사람과 싸우기 위해 십 년 만에 처음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오늘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제 모습이 하도 부끄러워서….”
이 어머니는 끝내 울음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어머니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거나 끄덕이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도시에 살 때 딱, 저 모습이었겠구나!’ 싶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흘린 진솔한 눈물이 제 마음을 오랫동안 적셨습니다. 다음에 그 어머니를 만나면 머리 숙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많은 이들 앞에서 용기 있게 들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