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목협의회 ‘청년분과’ 사목위원에 처음 임명된 건 이십 대 중반이었다. 당시 우리 본당에는 청년회장이 당연직으로 사목위원이 되는 내규가 있어서 엉겁결에 두 자리를 겸임했는데, 너무 어린 나이라 정작 회의장에서는 분위기에 눌려 입도 뻥긋 못하고 나왔다. 이후 나중에 기회가 다시 주어지면, 꼭 한번 ‘제대로 해봐야지’라고 마음속에 되새기고는 했다.
그런데 웬걸,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정작 기회가 다시 주어졌을 때는, 의외로 바로 냉큼 내민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미 교회 밖에서 맡고 있는 여러 직책들이 있어, 쉽게 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제대로 못 할 거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옳아’라는 것이 그때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하던 일의 임기가 끝난 후에 기회를 주시면 시작하겠다고 끝끝내 고사했다.
그렇게 몇 번의 권유와 사양이 있는 와중에 뉴질랜드에서 손님 한 분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동문 선배이긴 하지만, 학창시절 땐 몰랐다가 SNS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이여서, 그렇게 친밀도가 높지는 않은 분이었다. 그래서 “왜 찾아오셨냐?”고 물어봤더니, 황당하게도 본인도 왜 찾아왔는지 모르겠단다. 그냥 왠지 한국에 왔을 때 한번 가봐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어 찾아왔다고 했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잠시 흐른 후, 꺼낸 얘기는 뜻밖이었다.
뉴질랜드 한인성당의 전례분과장을 맡고 있었는데, 전례 양식과 기타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려고 국내에 들어온 길에, 나에게 들렀다고 했다. 그런데 그분도 처음부터 사목위원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이유로 계속 도망 다니다가 결국은 수락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저도 지금 비슷한 고민을 하던 중이라고 얘기했더니, 그제야 ‘왜 자기가 여기를 오고 싶어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는 것이다.
매년 11월이 되면 내년을 준비하는 회의를 여는데, 청년들을 비롯해 모든 단체가 한 번씩 몸살을 앓게 된다. 단체장이나 임원을 서로 하려고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여러 이유를 들며 서로 고사하려는 경우도 많다. 이때 ‘아직은 내가 나설 때는 아니야. 좀 더 배우고 시간이 지나면 그때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그때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내가 언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때인지 파악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른바 ‘그때’라는 것은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일까? 뉴질랜드에서 찾아왔던 그 손님은 잔잔히 자신의 얘기를 들려준 다음, 본인이 지니고 왔던 묵주 하나를 내게 넘겨주고 자리를 떴다.
짐작하다시피 그날 이후로 나는 청년분과장을 맡았다. 걱정했던 시간 조절은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주셨다. 사실 당시 맡고 있던 제일 큰 자리 하나에서 쫓겨나게 만들어 주셨는데, 막상 그 일이 생겼을 때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그 꼼꼼함이시라니!
자, 우리가 하느님 사업에 참여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지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은 과연 누구실까? 사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하느님만이 아신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