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에는 나에게 고향 같은 곳이 있다. ‘로피아노’다.
대학교 1학년 때 본당에서 청년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포콜라레 운동(마리아사업회)의 첫 번째 소도시인 로피아노는 2003년 KBS에서 성탄 특집으로 소개된 적이 있는 마을이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 있는 소도시로 이곳의 유일한 법은 ‘사랑’이다. ‘형제애’를 사는 하나의 모델이 되는 곳이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아 길에서 누구를 만나도 늘 반갑게 손 흔들며 인사를 나눈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 마치 지나가는 새들과 들에 핀 꽃들조차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길에서 누군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넬 때 따뜻한 정을 느낀다. 그 따뜻한 정, 사랑은 모든 민족과 언어를 초월해 전 세계 공용어로 서로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하고 친근하게 느끼게 한다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땅의 작은 천국’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의 삶은 요즘처럼 주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에 무관심하게 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누군가에게 기쁜 일이 있을 땐 축하하며 고통이 있는 곳에서는 함께 아파하고 위로를 나누는 정을 느낄 수 있어 참 좋다.
2006년부터 2년 동안 이곳에 살면서 국적과 문화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사랑으로 상대방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훈련을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어도 잘못하는 데다 서로 다른 점이 걸림돌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았기에 작은 행동이나 배려가 빛을 발하지 않았나 싶다.
말을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고 “내가 받길 원하는 대로 상대방에게 해주어라”는 복음 말씀을 살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상대방 안의 예수님을 보면서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는 말씀처럼 우리가 있는 곳에 마치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 듯했기에 그분의 사랑을 닮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일어나 먼저 사랑하기 위해 침구류 정리를 도와준다든지 아침 식사를 먼저 준비한다든지, 그리고 조금 귀찮더라도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든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를 할수록 내 마음이 더 풍성해지고 기쁨이 커짐을 느꼈다.
언어와 문화 차이도 사랑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것임을 배웠지만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을 때도 있고 오히려 그런 순수한 마음이 이용당할 때도 있다. 하지만 따뜻한 말과 행동은 전염성이 강해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옮겨감을 느낀다.
삶 안에서 필요한 순간마다 기억하는 말씀이 있는데 바로 요한1서에 있는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온다’이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에 인간적인 모든 것을 넘어 그분께서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신다.
상대가 먼저 사랑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면 이 땅이 천국처럼 되지 않을까? 그래서 현실 속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순간에도 다시 시작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다시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고 사랑하실 수 있도록! 로피아노에서 배운 인생수업을 현실에 적용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