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아우구스틴 신부님을 만나게 된 것은 한 지인으로부터 “시골의 가난한 고산족 원주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시는 현지 신부님이 계시니 도움을 드렸으면 한다”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은 수도회에 입회하시기 전부터 이미 ‘의사’이셨는데 나라가 공산화되면서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박해를 못 견디고 세속으로 돌아갔지만, 끝까지 남아서 신자들과 공동체를 지키신 분이십니다. 제가 신부님을 만났을 당시에 이미 한센병 환자와 에이즈 환자 진료, 가난한 학생들의 그룹홈, 고산족 원주민들을 위한 재가 복지 사업 등 많은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함께 곳곳을 방문하고 또 대화를 나누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시는 신부님의 모습에 같은 수도자, 사제로서 그분 앞의 제가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연이 되어 정기적으로 도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재작년 오랜만에 신부님을 뵈었을 때 같은 공동체 식구로부터 “신부님께서 현재 암 말기로 치료도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로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신부님께선 끝까지 그 사실을 제게 말하지 않았고 저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공항에서 작별할 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이 든 동양 남자끼리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신부님을 뜨겁게 포옹했습니다.
그곳에서 돌아온 후 감사하게도 제주교구 빈첸시오연합회의 도움으로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해 드릴 수 있었고 신부님께 감사하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신부님께 드린 마지막 선물이 되었고 신부님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메일이 되었습니다.
몇 개월 후에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신부님께서 생전 일하시던 곳 중의 하나인 에이즈 환자 진료소 한쪽 벽에 신부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직원께서는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신부님께서 헌신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위해 일하셨기에 그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걸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신부님은 눈에 보이는 사진만이 아니라 이미 그곳 사람들의 가슴에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어릴 적 동네 친구, 학교 친구 선후배, 직장 동료 등. 하지만 그중에서 정말로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람, 눈가가 촉촉이 젖어오는 사람, 언제라도 좋으니 꼭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그런 사람 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인연은 머리로 기억하고 어떤 인연은 가슴으로 기억합니다. 올 한 해도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 중 내가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지요? 또한, 나를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을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는지요?
(아직도 박해가 있는 곳이라 혹시라도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피해를 볼까 봐 ‘나라 이름’과 ‘지역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