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차 이스라엘에 머무는 동안 저는 운 좋게도 예루살렘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독일 수사 신부님을 알게 되었는데, 이듬해 그분은 제게 베들레헴 순례를 제안하셨습니다. 자상한 신부님은 출발 전 낙타와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겁이 많은 제가 쭈뼛쭈뼛하는 사이 성큼 다가온 낙타는 제 손을 핥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빼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낙타가 제 손을 물기 시작한 것입니다. 점점 그 강도가 세지며 낙타의 이빨에 살이 찢기는 느낌이 들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소릴 듣고 낙타 주인이 달려왔지만, 이미 손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놀란 신부님은 서둘러 저를 차에 태우고 유다인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초막절(이스라엘 사람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한 것을 기념하는 명절)이라서 모두가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니 차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은 “아무래도 방향을 돌려 팔레스타인 대학병원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마터면 예루살렘에서 손바닥 한가운데에 구멍이 날 뻔했네요. 아니, 제가 무슨 예수님도 아니고, 하하!”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신부님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점점 어지럽고 구토가 날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도무지 병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이런 데서 잘못 치료받고 파상풍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겁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낙타가 사람을?!” 하고 의료진이 놀라 모여들었습니다. 유례없이 낙타에 물려 온 동양인에, 로만 칼라를 한 가톨릭 사제까지! 무슬림 병원에서 절대 흔한 광경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엑스레이실에서도 응급실에서도 모두가 너무도 상냥하고 친절했습니다. 몸에 한기가 돌아 덜덜 떠는 제게 히잡을 쓴 간호사들은 이불을 가져다 겹겹으로 덮어주며 다정히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게다가 말이 안 통하면 어쩌나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그들의 영어 실력은 감탄할 만큼 뛰어났습니다.
다행히 뼈는 무사하다며 의사는 “낙타도 한번 깨물어 주고 싶었나 보네요” 하고 웃으며 제 긴장을 풀어주었습니다. 그제야 굳어있던 신부님의 표정도 밝아졌습니다. 저는 병원에 들어서며 못 미더운 얼굴을 했던 것이나 그동안 팔레스타인과 무슬림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이 몹시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간호사가 된 당시 실습생과 가끔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나눕니다. 물론 온통 아랍어인 그녀의 소식을 자세히 알긴 어렵지만, 이제 그 글자가 두렵거나 낯설지는 않습니다.
“누가 네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 두 번째로 큰 계명인 ‘이웃 사랑’을 비유로 설명하시던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제가 볼품없이 가여웠던 순간, 생면부지의 외국인이자 이교도인 저를 가족처럼, 친구처럼 편히 돌보아주었던 그들, ‘착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예루살렘에서 만났습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