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357. 미천하고 낮은 이를 드러내 보이시는 주님

(손병선, 아우구스티노, 한국평협 회장)
(손병선, 아우구스티노, 한국평협 회장)

저는 5대 선조 때부터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집안 후손입니다. 하지만 일찍 혼자되신 조모님께서 불교에 심취하시는 바람에 신앙이 이어지지 못한 채 지내다가 부모님께서 선종하시기 직전 대세를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이후 제가 신앙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은 저의 당숙 덕분입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저희 당숙께서는 오랫동안 본당의 전교 회장으로 봉사하시고, 신심도 깊으셨습니다. 생전에 교구로부터 인정받아 교황청에서 수여하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기사 작위까지 받으셨지요. 명절 때면 항상 형님들과 함께 인사를 드리러 찾아뵈었는데, 그때만 해도 우리 가족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었기에 당숙께서는 안타까워하시며 교리를 가르쳐 주시려고 애쓰셨습니다.

꼼짝없이 앉아서 듣고 있다가 다른 손님이 오시면 형님께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빨리 나가자고 눈짓을 해, 어렵사리 탈출해 웃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러한 당숙의 뜨거운 신심과 기도가 저희 집안에 신앙이 다시 이어지는 밀알이 되었습니다. 위령 성월을 맞아 당숙을 향한 고마움을 기억하며 기도드리는데, 아마 지금쯤 당숙께서도 천상에서 우리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제 머리도 백단풍이 든 채 어느덧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40년 가까운 신앙생활을 돌아봅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과분한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시고, 함께 입교하여 성가정을 이루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래전 주님과 빅딜을 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 업무차 독일 출장 중이었는데, 배우자와 통화 중에 이상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종합병원에서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제 배우자의 건강만 책임져 주시면 당신을 위해 무슨 일이든 시키시는 대로 따르겠다고 말입니다. 주님의 도우심 덕분에 배우자는 건강을 회복했고, 수호천사처럼 저를 항상 응원해 주며,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밝게 살아갑니다.

저를 지탱해 주는 큰 원동력이지요. 이후 저는 감히 깰 수 없는 주님과의 계약 안에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주님과의 빅딜은 참 잘한 선택이었고, 저는 행복한 남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젊어서부터 직장 업무로 분주한 나날을 지낼 때도 주님께서는 제가 늘 작은 봉사라도 하도록 불러 주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한없이 부족한 제가 감당하기에 벅찬 봉사 직분을 받았지만, 오로지 주님께 의탁하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미천하고 낮은 이를 낮추보지 않으시고 드러내 보이시는 오묘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고 제가 앞길을 계획하여도 발길을 이끄시는 분은 결국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도움을 주시고 이끌어 주신 많은 분께 보은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의탁하는 봉헌의 삶,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새롭게 다짐해 봅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