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내를 결혼시키면서 나는 바쁘게 식탁을 바꾸었다. 가족이 모두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식탁을 사기 위해 여기저기를 다니며 행복했다. 막내의 늦은 결혼이 반갑기도 했지만 식구가 하나 더 온다는 것은 더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막내가 신랑을 데리고 오면 우리는 손주까지 딱 열 명이다. 나는 가족끼리 밥 먹는 일을 좋아한다. 모두 함께 식사를 즐긴다는 것은 행복이다. 나는 들떠 있었다.
새로운 식탁에 열 개의 의자가 놓이던 날, 나는 하나하나의 의자에 다 앉아 보았다. 그 또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면서 큰 사위도 되어 보고 큰 딸도 되어 보고, 둘째 사위도 되어 보고 둘째 딸도 되어 보고, 셋째 사위도 되어 보고 셋째 딸도 되어 보고, 큰 손주 작은 손주 막내 손주를 차례대로 그 사람이 되어 보았다. 열 개의 의자는 다 마음저리고 사랑스럽다. 왠지 미안하고 고맙다. 자주 만나기는 하지만 나는 상대방이 되어 생각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생각하면 내 생각 내 아픔 내 불편함만 말해왔는지 모른다.
하나하나의 의자에 앉아 보면서 그때 나는 알았다.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나는 큰사위가 되어 본다. 그 삶도 어려웠다. 대학 시절 의자에 몸을 묶어 놓고 깡통 하나 옆에 놓고 공부하면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아버지의 어려움을 그렇게 위로하고 싶다고 했었다. 내 딸과 연애하고 결혼 후 단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 집안 어려움이 있으면 늘 혼자 사는 나를 위해 너저분한 일을 다 하면서도 한 번도 얼굴 찡그린 적이 없다. 나는 그 의자에서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라고 말했다.
둘째사위 의자도 반갑다. 넉넉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마음이 부드럽고 성실 그 자체인 능력으로 큰 회사 부장을 하고 있는데 언제나 웃는 얼굴이며 성당에도 열심이다. 내성적이지만 나는 안다. “어머니…” 하고 전화를 걸어오는 그 목소리에 나는 늘 고맙고 반갑다.
나는 장모가 아니라 그들의 좀 모자라는 친구다. 그래도 좋다. 새로 오는 막내사위 의자에 앉는다. 가슴이 좀 떨린다. 살아갈수록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처음 그를 보면서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남자들끼리 보이는 것이 있지 않은가. 두 사위가 모두 인상이 좋다고 말한다. 디자인을 하는 교수로서 모자람이 없지만 인간이 깊고 그윽하다.
“우리 잘해 봐. 그리고 내 딸을 잘 부탁해”라고 나는 의자에 앉아 말했다. 왠지 가슴이 따뜻해온다. 차례대로 세 딸의 의자에도 앉아 본다. 큰 딸은 늘 내 어머니처럼 집안일을 결정한다. 나는 따른다. 듣고 보면 옳은 것이다. 어릴 때 집안이 뒤숭숭해 마음앓이를 많이 했지만 마음이 밝고 집안 통솔을 잘해나간다. 그 아이인들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까.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는 딸들의 의자에서는 계속 이 말만을 했다.
약지 못해 늘 지기만 하는 딸들이 남편 만나 그래도 자식 낳고 사는 모습이 늘 나는 감격스럽다. 둘째는 나를 많이 닮았다는데 반갑지 않다. 날 닮아 뭐하겠는가. 성당 봉사도 잘하고 마음이 착해 세상 걱정은 혼자 다 하지만 아들 낳고 잘 산다. “고맙다 고맙다” 하고 막내 의자로 옮긴다. 아빠가 가고 유학에서 돌아와 10년을 나하고 살면서 많이도 싸우고 부둥켜안고 울기도 많이 했다. 밉다가도 가장 사랑스럽다. 그 아이가 결혼을 한 것이다. 나는 의자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잘 살아라 잘 살아라.” 그리고 손주 의자 셋에 뽀뽀를 했다. 사랑해! 사랑해!
마지막 의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있다. 거기 우리 주 그리스도가 계신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