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3수생- 4>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어 도쿄로 돌아왔지만… 참 외로웠다. 안팎으로 그랬다.
나는 무섭도록 크고 처절한 변화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는데,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져 있지 않다는 것이 그렇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유배시키듯 홀로 나와 있던 도쿄라는 일본 땅에서의 생활만이 아니었다. 세례를 받고 나서 내 영혼의 나날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아는 교우가 없고, 도쿄에는 한인성당이 없었다.
어디에서 주일미사를 볼 것인지도 막막했다. 고심 끝에 집 가까이에 있는 조치대학의 ‘성 이냐시오(St. Ignatius) 성당’을 찾아갔다. 미사시간을 알아보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나는 성당 입구에 써 붙인 안내문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세례를 받는 데는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일본 사람들은 공짜라면 세례도 받는가 싶었다.
겨우겨우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건물 지하에서 한인들의 주일미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가기 시작했다. 성탄이 가까워지자 미사시간에는 신자들이 부쩍부쩍 늘어났다. 냉담하고 지내던 신자들이 성당을 찾으면서였다.
거기서 또 술 냄새를 만났다. 어떻게 된 일인지, 주일미사를 보러오는 젊은 여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술 냄새를 풍기는 게 아닌가. 아카사카를 비롯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었다.
그녀들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갸륵하지 않은가. 새벽까지 술을 팔며 손님들에게 부대끼다가 미사시간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 앞에 와 무릎을 꿇다니.
문제는 옆자리나 뒷자리에 이 아가씨들이 앉을 때였다. 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때로는 솔솔, 때로는 울컥울컥 술 냄새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술 냄새 솔솔.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술 냄새 솔솔.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술 냄새 울컥울컥. 그러다가 풀썩 진한 향수 냄새가 내 무릎으로 떨어진다. 옆자리의 아가씨가 꾸벅꾸벅 졸다가 내 무릎으로 엎어졌던 것이다.
백두산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모래언덕에서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걱정이 되셨던지, 이경재 신부님은 각별하게 나를 챙겨주셨다. 나환우들을 위한 모금활동으로 해외에 나갔다가 귀국하는 길이면 꼭 도쿄에 들러 나를 지켜보기를 잊지 않았다.
나무 십자가 하나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여행가방에 넣고 와 내게 건네주기도 하셨다. 특별한 의미를 가지라고 나환우들 방에 있던 것을 떼어서 선물로 가지고 왔다고 하시면서.
다음 해 사순절 후의 첫 미사 때는 좁디좁은 비즈니스 호텔방에서 나 하나를 놓고 미사를 올려주시기도 하셨으니, 그 행복을 어떻게 표현하랴.
내 눈높이에 맞게 십자가를 놓기로 하자고, 우러러 보이는 높은 곳에 십자가를 걸지 않기로 한 건 그때였다. 손을 내밀면 손에 잡히는 높이에 십자가를 걸고, 거기 이마를 대고 기도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내 눈높이의 십자가였다.
높고 아득하게 우러러보이는 십자가에 매달려 무언가를 달라고 애원하는 기도는 하지 말자. 주님의 손을 잡듯이, 그분의 허리에 매달리듯이 그렇게 늘 함께 계시는 그분께 기도하자.
그래서 십자가를 내려 건 내 기도에는 이런 물음이 많다. 저 이렇게 할 건데 괜찮겠지요? 꼬박꼬박 잘 지켜봐 주실 거지요, 주님?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