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32. 심는 사람의 행복

권경수 헬레나(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 이사)
권경수 헬레나(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 이사)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 추억 속에 몰입하는 즐거움은 먼 훗날까지 세상에 물든 우리 자신을 신선하게 이끌어 주는 귀한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즐거운 추억의 놀이가 있었다. 그것은 나만의 작은 정원을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미숙하기 짝이 없는 정원사가 돼 무척 행복해 했던 그 시간을 잠깐 되돌아보고자 한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그 아이의 집 마당엔 언제나 봉숭아, 채송화, 나팔꽃, 땅국화가 심어져 있었다. 우리 집 마당에서 보던 큰 벚꽃나무, 감나무, 복숭아, 철쭉나무는 내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친구네의 아담한 꽃밭에서 활짝 웃는 작은 꽃들은 친근한 정감을 불러일으켰고 나는 그 꽃밭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고운 가랑비가 오는 날엔 친구 집으로 꽃삽을 들고 뛰어가 작은 꽃밭을 오가며 꽃모종을 해왔다. 작은 마당에 꽃들을 심는 마음은 즐거웠고 그 꽃들이 저마다 활짝 피어 귀여운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어린 내 마음은 심고 가꾸는 행복으로 가득했다.

언젠가 나는 심는 사람의 행복, 심는 사람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여든의 노인이 복숭아나무를 심는 것을 보고 이웃 사람이 물었다. “설마 그 나무에서 복숭아를 따 먹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죠?” 노인은 삽질을 멈추고 말했다.

“내 나이에 복숭아를 따먹게 되리라곤 생각지 않소. 나는 평생 내가 심지 않은 나무에서 따 온 복숭아를 즐겨 먹었소.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았다면 나는 복숭아를 맛보지 못했을 거요. 나는 나를 위해 나무를 심은 다른 사람에게 빚을 갚기 위해 심는 거라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지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이웃에게 따뜻한 정을 전하는 사람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음에 애덕을 품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남에게 줄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웃을 위해 복숭아나무를 심는 노인의 지혜를 생각하면서 나도 내 마음속에 애덕을 키우고 누군가에게 줄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는 내 마음에 울려오는 미국의 여류시인 매들린 브릿지스(Medline Bridges)의 시에 담긴 메시지를 떠올린다.

“당신이 갖고 있는 최상의 것을 세상에 내놓으십시오. 그러면 최상의 것이 당신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사랑을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 삶에 사랑이 넘쳐흐르고 당신이 심히 곤궁할 때 힘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를 위해 가시관을 쓰신 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느라 넘어지시며 채찍질에 살점이 묻어나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는 때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상의 사랑인 목숨을 아무런 조건 없이 내어주시기 위해 고통에 짓눌려 계신다.

그 어떤 죄목도 없이 죽음의 골고타를 향해 묵묵히 걸으시는 예수님은 오로지 성부를 우러르시고 영원한 생명을 지켜내신 구세주시다. 이제 우리도 이 사순시기에 그분을 따라 한걸음씩 동행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조이스 엘머(Joyce Elmer)의 시에 그려진 오롯이 하느님만을 향해 기도하는 나무를 생각하면서 사순절의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겨본다.

“내 결코 보지 못하리.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를,
단물 흐르는 대지의 가슴에 굶주린 입을 대고 있는 나무,
온종일 하느님을 바라보며 잎 무성한 두 팔 들어 기도하는 나무.
눈은 그 품 안에 쌓이고 비와 정답게 어울려 사는 나무,
시는 나 같은 바보가 만들지만 나무를 만드는 건 오직 하느님뿐.”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