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저는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폭풍 속에 배가 난파되고 홀로 살아남아 무인도에서 깨어났다면, 저는 홀로 살아남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도,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도 잃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인간이란 타인이 있기에 자신의 존재성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키에슬로프스키, 당신 영화는 제게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차마 들어가 볼 수 없었던 커다란 성이었습니다. 당신 작품은 바닷가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오두막집도 되었다가 대학시절 모스크바에서 살았던 다닥다닥 붙은 원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신 영화 속에는 언제든 제가 들어가 벽을 만져보고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누워볼 수도 있는 향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제게는 ‘당신의 영화를 함께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도 괜찮을 만큼 마음으로 보고, 만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론 당신만큼 마음에 있는 그 무수한 방을 가보지도, 생각지도 못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알 길 없는 설움이 복받쳐 당신은 세상 어딘가로 훌쩍 떠났습니다. 당신 영화에는 외로움을 넘어선 고독이 가득합니다. 고독하다고 하여 그리운 이가 없는 것은 아니듯, 북적이는 사람 냄새가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윗집 혹은 옆집에 사는 이들의 한밤중 물소리 하나에도 감독인 당신은 배려하고, 가슴 아파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원하는 사실임에, 당신의 고독이 제 것 같고 더 애달프게 느껴집니다.
「블루」, 「레드」, 「화이트」의 3부작과 「십계」 시리즈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짧은 생을 마감한 당신의 인생은 저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습니다. 사실 당신 작품을 분석한 적도,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적도 없는 제가 아는 것은 고작 이 정도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유약했던 청년 시절의 고뇌, 생각, 그리고 제 인생의 일부를 당신 작품을 통해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정체성에 대한 방황으로(?)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렸던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며, 처음에 들었던 불편한 저의 감정이 서서히 동정과 측은함으로 바뀌고 결국 그들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법입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초저녁 갈 곳이 없는 발걸음은 돌부리에 걸린 것도 아닌데 비틀거리고 힘이 없어 결국 넘어져 눈물 대신 피 흘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고백하자면 당신 영화는 저에게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이었습니다.
당신 작품의 주인공은 늘 우리네 곁에서 함께 하고 있는 그런 인물입니다. 저 또한 그런 인간입니다. 피할 수 없는 내 자신의 거울 속 자아를 당신의 작품을 통해 만나왔다고 고백했듯이 저는 당신 영화를 통해 지극히 행복했고, 설레었고, 아름다웠고, 비극적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습니다. 비가 오려나 봅니다. 청춘의 피 뜨겁던 한때,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습니다. 미친 듯 달려가다가, ‘찻숟갈로 바닷물 퍼내기’라는 선배의 조언에 좌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신의 영화를 기다린 지 한참입니다. 그 시간은 기다리는 이에게는 영원의 한켠을 나눠 가질 수 없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오지 않는다고 기다리지 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실은 당신이 오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닐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일, 그것이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에, 당신이 오지 않아도, 당신을 볼 수 없어도 저는 기다림의 목적지에 이미 도착했는지도 모릅니다.
독특하다면 독특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한 나의 삶을 들여다보며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행위이지만 그래도, 그래서 노력해야겠다는 초심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처럼 하나하나 소중한 존재임을 되새기며 저 역시 이런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게 하루하루 노력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