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40. 사랑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민병훈 바오로(영화감독, 한서대 연극영화과 교수)
민병훈 바오로(영화감독, 한서대 연극영화과 교수)

 

제가 사는 이 도시에는, 지난밤 비가 내렸습니다. 어느 봄비가 안 그러겠는가마는 아주 조용히, 어떤 소리도 없이 그렇게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비가 그쳤습니다. 밤새 비 내린 후 여명이 비춰올 즈음, 푸르스름한 기운과 함께 눈망울이 작아졌습니다.

모든 잎을 떨구어 버린 헐벗은 저 나무들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새싹이 오르고 있음을 봅니다. 천지에 담긴 기운 역시 봄만 되면 다시 소생하는 자연의 순환 속에 이별의 슬픔을 위로합니다.

사랑의 교황님! 영화든 문화든 그것이 상업적이든 예술적이든 그걸 만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진정한 소통일 것입니다. 나의 이야기를 모두가 공감하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건 작품의 성패와 관계없이 기분 좋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영화적 스타일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똑똑해야 한다고, 똑똑하지 못하면 똑똑한 척하고 살아야 무시 받지 않는다는 피해의식도 있었습니다. 강해야 하고, 뾰족해야 하고, 날카로워야 하고, 날렵해야 한다. 그것이 제가 지향하는 아름다움의 척도였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그지없이 약한 사람입니다. 삶은 우리가 죽으면 같이 죽고, 죽음은 우리에게 매일같이 일어나는 그런 일인데 저는 여전히 저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단절된 개인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제가 타인이 아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보고 싶어 하지도, 듣고 싶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자신의 고통, 저 자신의 괴로움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황님을 운명처럼 알게 됐고, 교황님의 모습과 행동을 보게 됐습니다. 그건 행운이었습니다. 저는 교황님을 통해 진정한 소통이란 어떤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타인으로 시작해서 한 인간의 깊은 내면까지 온전한 모습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는 자세, 방식을 배웠습니다.

저를 이루고 있던 본래의 제 모습 중, 타인을 대하는 방식과 수용의 서툼, 그래서 부족하고 잘못 채워져 있던 부분들을 바로 채우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으로, 그런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본래,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 단점도, 허물도, 때로는 무지함과 어리숙함도 장점이며 기꺼이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부족한 것은 서로 채워가면서 같이 걱정하고 의논하고 노력하면서 후회를 가장 작게 하는 삶을 위해 애쓰려는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한 게 아닐까 하는 점을 말입니다.

영화는, 분명 타인과 나와의 만남이고, 잃는 것과 포기하는 것과 얻는 것들이 공평하게 자리를 잡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아서 얻게 되는 것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이 일을 통해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이 제일 첫 번째 얻음이었습니다.

사실 현실 속에서 저처럼 충만한 행복을 누리기가 쉽지 않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늘 탈이 나기도 하고 쉽게 틀어지기도 하는 것이 우리 인생살이일 것입니다.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저 스스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지만 또한 훨씬 크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공경하올 교황님. 세상은 저의 괴로움 하나만 있다면 아주 작은 것일 겁니다. 그러나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저와 같은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저의 고통은 엄청나게 작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서로 마음을 보듬고 헤아리는 것이 결국 그런 견고한 마음을 만드는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지난밤의 오열은, 이제 잊어야 할 시간이라고, 비가 멈추듯 눈물도 그쳐야 한다고 새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다릅니다.

햇빛도 완연히 다릅니다. 계절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옵니다. 봄이 저물고 시원한 여름이 오고 있습니다. 환절기, 마음의 건강 조심하면서 늘 하느님의 사랑 충만하시길 소망하며 교황님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뜨거운 여름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에서 두 손 모아 기다리겠습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