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일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에게도 꽁꽁 숨겨 놓고 싶은 일이 있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읜 남편에게 큰 아주버님은 부모님 같은 분이시다. 신혼 때 절친한 친구를 대동하고 집으로 놀러 오셨다. 가장 어려운 분의 방문에 긴장한 나는 솜씨를 부려 정성껏 점심상을 올렸다.
그런데 뜻밖으로 진짜 차린 게 없다고 면박 아닌 면박을 주신다. 경상도 특유의 표현을 하셨지만, 그때 내 나이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그릇이 작았다. 그 순간 받은 민망함이 깊은 곳에 가시로 박혔다.
아주버님은 시절 인연이 맞지 않아 불행한 삶을 사셨다. 젊은 날 20대에 벌써 일본에서 큰 공장을 경영하셨고, 그 시절에 승마를 즐길 만큼 호쾌한 삶을 누린 분이 해방을 맞으며 조국으로 돌아오셨다. 한국의 현실은 어느 것 하나 뜻을 펼칠 수 없는 힘든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가까운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뜻밖에 남편의 그림을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그림 얘길 하다가 엉뚱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아주버님이 강매하다시피 해서 사게 된 연유를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날 우리 내외는 협상을 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림에 대한 당신의 자존심 하나를 걸고 결혼했다. 그것이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이제는 돈으로 드리지 절대로 그림은 안 된다’는 약조를 받았다. 조금만 더 나이를 먹었어도 삶의 질곡을 알았을 텐데, 그때는 머리만 있었고 가슴이 없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깊숙이 있던 가시의 염증은 더 커졌다. 주일마다 성체를 모셔도 숨겨놓은 미움의 가시 때문에 괴로웠다. 그래서 늘 나는 부끄러운 영혼이었다. 모든 생명은 고리로 연결된 세상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미성숙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구에 계신 아주버님께서 심장질환으로 쓰러져서 의식이 없다는 소식이 왔다. 남편은 안절부절못하고 애가 탄다. 나야말로 큰일 났다. 의식이 없으시니 용서를 청할 수도 없지 않은가? 바로 신부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짙은 고해성사를 보고 도움을 청했다.
먼저 그분을 찾아뵙고 진심 어린 화해의 시간을 갖고 그다음 그분을 위해 묵주기도를 드리라고 하셨다. 병실에서 그분의 영혼 앞에 홀로 앉았다.
움직일 수도 없고 의식도 없으신 그분 등 뒤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남편을 사랑한 만큼이나 당신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이인데, 작은 그릇인 내가 이제야 당신께 용서를 청합니다. 영혼을 마주하며 눈물로 화해를 구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촛불을 밝히고 성모님 앞에 꿇어앉았다. 급박한 시간만큼, 풀지 못한 나의 죄만큼, 간곡한 기도를 드린다. 온 마음을 다해 올리는 간절한 기도. 풀지 못한 매듭과 죽음을 앞둔 영혼의 회개와 안식을 위해 묵주 한 알, 한 알을 온 마음을 다해 올린다.
어느 사이 향긋한 장미향이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아!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환희가 가슴 깊은 곳에서 배어 나온다. 영적으로 묵주 한 알 한 알이 장미 한 송이라더니…. 온몸이 희열로 날아갈 듯하다.
신부님께서는 라자로라는 세례명과 함께 대세를 주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갔다. 매일 밤 남편과 아주버님을 위한 묵주기도를 올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세 시, 침대에서 둘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바람결처럼 온몸을 스쳐 가는 강한 기운에 확 잠이 달아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리며 운명하셨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아주버님의 영혼이 다녀가신 것이다.
아! 아! 간절한 나의 마음이 전해지다니!
성모님께서 중재자가 되어주시다니!
연약한 인간의 지혜가 닿을 수 없는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