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43. 소나기처럼 쏟아진 주님의 특은

정미연 아기 예수의 데레사(서양화가)
정미연 아기 예수의 데레사(서양화가)

 

주님께서는 하시고자 할 때 우리가 감히 생각지 못한 일을 한꺼번에 주신다. 지금 생각해봐도 부족한 나에게 엄청난 일을 부어주신 그분의 큰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어느 날 바오로 딸 수녀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긴히 상의할 일이 있다며 수도원에서 만나자고 하신다. 여주 사도 모후의 집을 설계하신 김광현 교수님께서 14처를 의뢰하신다는 말씀이다. 새로 짓게 될 수녀원 성당의 십자가, 14처, 감실과 성모상까지 한번 제작해보라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주님의 특은으로 쏟아진 것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본당인 서울 세검정성당 수녀님께 이렇게 큰일을 앞두고 성전에서 기도하고 싶으니 성당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저녁 9시 제대 앞 정중앙 바닥에 결가부좌를 하고 기도에 든다.

“주님! 이 부족한 딸을 선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신이 사랑하시는 딸들이 거하실 수도원의 성당입니다. 은혜로운 곳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먼저 부활의 십자가인가요? 고통의 십자가인가요?” 온 마음을 맡기고 주님의 말씀을 기다린다.

고요한 침묵 가운데 내 마음을 스치는 기운을 감지한다. 풍요로운 이 시대에 놓치기 쉽고, 피해가기 쉬운 고통에 대한 메시지가 위로부터 전류가 되어 짜릿하게 전해온다. 예수님의 얼굴에는 고통을 이미 초월하셨다. 그러나 손의 느낌은 감당할 수 없는 수난의 절정이 강하게 각인됐다.

이제 작품의 실마리는 가닥이 잡혔다. 재료를 준비하고 철골로 뼈대를 잡았다. 드디어 흙으로 십자가상 작업을 시작한다.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며 행복한 시간이 흘러간다. 2m나 되는 흙 작업을 3일에 끝냈다면 누가 믿을까? 나의 힘이 아니었다.

이제는 한국적 이미지의 넉넉한 성모님을 만들 차례다. 기다랗게 데포름한 십자가상과는 반대로 펑퍼짐한 우리의 어머니상을 표현해야 한다. 아기 예수님을 세상에 봉헌하시는 후덕한 성모상이다. 현대적인 맛과 한국적인 느낌을 더해 편안하게 안기고 싶은 성모님을 나타내고 싶다.

뒷면은 수녀님들께서 외로울 때 등 뒤에서 고백도 하고, 울기도 하고, 숨기도 하시기에 충분한 넉넉함과 후덕함을 강조했다. 이제는 14처를 고민할 차례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완벽한 시나리오 연출가임이 틀림없다. 14처를 시작할 당시 막내 오빠의 간암 증세가 심각해져 눈물을 닦으며 병실을 오가게 됐다. 각 처를 그릴 때마다 슬픈 감정의 이입은 절정에 달한다.

깊은 현색의 블랙홀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고, 옷 벗김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며 돌아가신다. 죽음을 목전에 둔 막내 오빠와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예수님 사이에서 내 눈의 비늘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

세포 깊숙이까지 슬픔이 하나가 돼 나의 넋을 놓아버리는 동안 14처가 완성됐다. 일련의 작업을 이어가면서 슬픔과 아픔이 승화돼 주님께로 향하는 뜨거운 마음은 세차게 타오른다.

그렇다! 감실의 표현은 불꽃이다! 성령의 불길로 감실을 뜨겁게 하자!

이렇게 완성된 성당 앞에 서고 보니 치열했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그리고 1년 후, 뜻깊은 성당에서 수녀님들과 함께 열흘 동안 침묵피정을 했다. 고락을 함께한 작품들이 나의 손을 떠나 원래 자리인 양 힘있게 서 있다. 마음이 뿌듯하다. 피정 예식 중 지하 소성당의 십자가에 연로하신 수녀님이 주님의 발등에 애절하게 입 맞추는 장면을 보았다.

순간,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포개지면서 북받쳐 오르는 감동을 자제할 수가 없다.

아! 아! 아!

주님은 나의 손을 잠시 빌리신 것이구나!

모든 성상은 기도와 합쳐지면서 그 자체로써 성령의 기운을 드러내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표현할 길 없는 영혼의 사다리를 타고 내면으로 깊이 더 깊숙이 들어가 온전히 주님을 향해 엎드린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