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대학교는 예술대학이 경기도 안성에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예술대학 문예창작전공은 안성에 있다. 나는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데리고 한 해에 한 번은 꼭 가보는 곳이 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미리내 성지이다.
김밥 몇 줄 사고 생수 몇 병 사서 날씨 좋을 때 소풍 삼아 가는데, 야외수업이라 학생들이 사진도 함께 찍으며 무척 좋아한다. 졸업 후에 여러 학생이 미리내 성지에 갔던 일을 얘기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어 고마웠다고 감사의 말을 건네 와 나도 보람을 느낀다.
언젠가는 시간 요량을 잘못해 103위 성당 2층에 있는 순교 장면과 형구 모형을 먼저 보여준 적이 있었다. 끔찍한 장면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비위가 약한 어느 여학생이 점심 먹을 때 제대로 못 먹고 물만 계속해서 마시며 힘들어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식사한 뒤에 겟세마니 동산이나 애덕고개, 무명순교자 묘지 등을 둘러보며 소화가 충분히 되었을 시간이 되어서야 103위 성당 2층으로 올라간다.
아, 이 땅의 선구자적 신앙인들은 정말 끔찍한 고문을 당하였다. 팔주리, 가위주리, 곤장, 학춤, 줄톱질….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킨 신앙 앞에서 학생들은 망연자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숨을 내쉬거나 눈물을 글썽일 뿐이었다.
무명순교자 묘지를 둘러보며 깊은 시름에 잠기곤 한다. 103위 성인이나 124위 시복 대상자는 그대로 만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된 분들이지만 무명순교자 중에는 노인, 아녀자, 아이들, 중인 이하의 계급이 많았다.
그 당시 신분은 보잘것없었지만 모두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어 신앙을 증거하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어찌 보면 그분들이 뼈로 만든 반석 위에 한국천주교회가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한국에서 박해는 한국교회가 창설된 지 1년 만인 1785년 3월부터 시작되었다. 중인인 역관 김범우는 그의 집에서 종교 모임을 했다 하여 고문을 당하고 유배지에서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 후 1801년의 신유박해, 1839년의 기해박해, 1846년의 병오박해, 1866년의 병인박해를 비롯하여 비교적 규모가 작았던 신해(1791), 을묘(1795), 을해(1815), 정해(1827), 경신(1860)박해와 1901년 제주에서 민란에 의해 피를 흘린 제주교난 등 잇단 수난으로 교회가 창설된 뒤 100여 년 동안 1만 명을 헤아리는 순교자를 냈다.
이들이 순교한 성지는 전국 방방곡곡에 있다.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에 특히 많은데 서울에도 삼성산 성지, 새남터 성지, 절두산 성지, 서소문 밖 성지가 있고 용산성당 성직자 묘역도 있다.
강원도에는 양양성당과 순교기념관이 있고 원주 강원감영과 옥터가 있다. 제주도에는 조천읍에 가면 제주의 첫 영세자이며 첫 순교자인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의 순교 현양비가 있다.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황해를 통해 귀국하는 길에 풍랑을 만나 표착했던 용수리 포구엔 제주표착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제주교난으로 희생된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공동 안장지인 황사평 묘역은 봉개동에 있다.
성지순례를 하러 외국에 가는 것도 좋지만 국내에만도 최소 100군데는 된다. 국내 성지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을 위해 책을 한 권 소개한다. 「가족이 함께 가는 성지순례」, 오영환과 박정자 두 분이 쓴 성지순례 가이드북이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