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휴가철이 되면 꼭 접하게 되는 뉴스가 있다. 유기견 급증에 관한 것인데, 이유인즉 휴가를 가면서 차에 싣고 간 개를 피서지에다 버리고 오기 때문이란다. 부산 지역에 휴가철인 7~8월에 버려지는 개는 800여 마리가 되는데 12~1월의 300여 마리보다 배가 넘는 숫자라고 한다.
동해안 쪽에도 피서철이면 유기견이 급증한다고 한다. 강릉보호소의 경우 매달 20마리 정도 들어오던 유기견이 7월에는 56마리로 늘었다고 한다. 새 주인에게 입양되는 확률은 40%, 나머지는 대개 안락사를 시킨다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있다. 개는 절대로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 충견이 자신을 두고 멀리 가버린 주인을 찾아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간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는 집에서 키우던 개를 한여름 복날을 맞아 팔아버리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왔다.
한술 더 떠 동네 사람들이 모여 개를 흠씬 패고는 잡아먹기도 한다. 요즘엔 온 가족이 애지중지하며 키울 때는 언제고 피서지에다 살짝 버리고 온다니! 개의 운명도 가슴 아프지만 온 가족의 집단 배신이 더욱 가슴 아프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육체에 가해진 엄청난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영화가 많이 제작되었는데 그중에서도 「The Passion of Christ」는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실 때의 상황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그려 관람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한편 생각하면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순간에 육체의 고통에 못지않게 배신감에 괴로워하고 외로움에 서러워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유다의 배신이야 체념한 측면이 있었겠지만, 베드로는 가장 믿었던 제자였기에 세 번 부인이 더욱 서운했을 것이다. 처음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시민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
하며 대대적으로 환영했는데 그리스도가 메시아의 역할도 안 하는 것 같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매질을 당하고 조롱을 받자 군중은 군중심리에 휩싸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치며 폭동이라도 일으킬 듯 난리를 친다.
최후의 만찬 후 그리스도와 제자 일행이 올리브 산의 기름 짜는 곳인 겟세마니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리스도는 깊은 잠에 빠진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제자에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말고 깨어 기도하라”고 했지만 웬걸, 세 제자는 쿨쿨 잠만 잤다. 그리스도가 체포되었을 때는 제자들이 몽땅 산지사방으로 달아났다. 시민들도 제자들도 자기를 외면했으니, 그리스도인들 이들이 서운하지 않았을까.
유다는 배신 이후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목매달아 죽는다. 죄책감에 사로잡혔다고 하지만 자살은 하느님을 두 번 배신한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세 번 부인을 후회하며 진정한 제자의 길을 가다가 순교하였다. 베드로는 진정으로 반성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천주교회의 반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와는 다르지만 우리 인간은 한때 사랑했던 짐승이나 은혜를 베푼 주변인을 매정하게 배신하는 경우가 많다. 내년에는 여름 휴가철에 주인한테 버림받아 동물보호소에 맡겨지는 개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기를 바란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