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를 보내며 뭇사람 앞에 선 자리가 여럿이다. 가장 뜻깊은 자리는 지난 12월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가 마련한 ‘이웃과 함께하는 성탄 음악회’에 진행자로 나선 일이다. 혼인 미사 이후 명동대성당 제대에 가장 가까이 갔던 행사다. 누구는 재능 기부를 했다며 추어올리지만 내겐 그저 영광스런 자리였다.
공연을 빛나게 한 출연자, 값진 말씀 주신 교회 어르신 덕분에 음악회는 내내 따뜻했다. 음악회를 시작하는 말은 제대 위에서 했지만, 다음 순서 때 아래로 내려와서 진행했다. 낮은 곳에서 청중과 눈높이를 같이하는 게 한결 나은 것 같아서였다.
출연자와 관객, 연설자와 청중을 두루 배려하는 일은 여느 사회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른바 ‘의전’만 따지면 진짜 주인공들이 멀뚱멀뚱하게 손뼉만 치는 들러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균형을 잡는 일은 행사 사회자가 최우선에 놓아야 할 것이다.
한 언론 단체 세미나 때 균형추를 떨어뜨릴 뻔한 일이 있었다. 국제 행사인 만큼 말하는 이들의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 ‘외국 기자들을 환영하는 말을 해달라’는 청을 받았다며 입을 뗀 고위 성직자는 “굶주림과 독재에 신음하는 아시아의 이웃을 뒤로하고 축하 모임을 하는 기자들은 반성해야 한다”며 일갈했다.
‘환영사’가 아닌 ‘쓴소리’에 현장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졌다. 아, 이 반응을 어쩌지? ‘이런 목소리도 있다는 걸 기자들에게 알려주셔 고맙다’는 얘기로 분위기를 되돌리려 애썼다.
이어진 국회의원의 축사는 설상가상이었다. “물난리가 났을 때 방송들은 즉시 속보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인터넷에 올린 시민들의 정보가 그 틈을 메웠다. 예언하건대, SNS가 활성화되면 기자란 직업은 없어진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기자 불용, 소멸 예언’은 동시 통역을 통해 각국 기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장내를 둘러보니 할 말 꾹 참으려는 듯 앙다문 입술이 한둘이 아니었다. 걷잡을 수 없이 냉랭해진 분위기에 큰일 났다 싶었다. 아, 어찌해야 할 것인가.
기자들 기분도 살려줘야 하고, 국회의원의 위세도 지켜줘야 했다. “의원 말씀에 공감한다. SNS가 발전하면 대의 민주주의에서 직접 민주주의로 바뀔 것이고, 그렇다면 기자보다 국회의원이란 직업이 먼저 없어지지 않을까…” 말 끝내기 전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노련한 정객답게 손뼉 치며 맞장구를 놓는 의원의 벌게진 얼굴이 보였다. 귀한 시간을 내서 자리 빛내준 의원을 무안하게 만들 수는 없는 일. 이후 새새틈틈이 그를 띄워주는 말과 이런저런 것들로 그의 기분을 누그러뜨렸다.
사실, 사회자의 언행만으로 상황을 다잡은 것은 아니었다. 좌중의 흐트러진 분위기는 최고령 참석자의 자칫 지루해질 수 있던 ‘환영사’ 덕분에 평온해졌다. 좌중의 마음을 눙친 ‘구십을 바라보는 현역 의사’의 말씀은 “1920년대에 태어난 나는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도 살아있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21세기 동갑이다”였다. 이 한마디가 국적과 직업, 나이를 떠나 모두를 환하게 웃게 했다. 그날 이후 ‘21세기 동갑’은 내가 잘 써먹는 명제가 되었다. 2001년에 태어난 아기가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 또래부터 연세 세 자릿수인 어르신까지 21세기 동갑이란 얘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질감, 동지 의식을 떠올린다면 세대 차, 계층 위화감 따위는 힘쓰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동갑끼리 한 살 더 먹는 새해를 맞았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