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이 순간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지금 이 순간 지면을 통해 공개되는 이 글에 대해 나는 생각해본다. 첫째, 나 자신을 홍보할까. 둘째, 나의 아름다운 마음만 표현하면 될까. 셋째, 모든 이와 함께 공유할 신앙의 이야기를 할까. 혹은 넷째, 순수한 내용만을 어떻게든 써볼까.
그러나 내 마음 깊숙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감사하라는 것”이다. 결국, 이 글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사’이다.
나를 움직이게 한 힘은 우선 나를 곳곳에서 찬양하라고 초대해준 은인들에서 비롯됐다. 신학교에 나를 보내준 어머니, 이모, 수녀님, 본당 신부님, 성소국장 신부님이 계시다. 그다음 신학교에서 나에게 힘이 돼줬던 사람들은 동창 친구들과 선배들, 교수 신부님. 그리고 세월이 흘러 찬양 가수로서 성장하게 해준 사람들까지 하면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은인이 있다. 감사하다.
하루, 일주일, 한 달, 한 해. 그리고 10년씩 흘러 지금에 이른 나의 인생 52년 동안 흘러온 나날 중에 나 스스로 한 것이 있는지 돌아봤다. 결국, 내 삶은 누군가 끌어주고, 함께하고, 당기고, 동의하고, 고민하고, 거부하고, 즐거워하고, 실망하고, 미안해하고, 아쉬워하고, 수많은 약속과 조정 속에 살아왔다.
그 가운데 하나의 원칙은 ‘살아 있는 동안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고향으로 날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고향은 나를 이곳에 보내신 그분이 계신 곳이다. 그분, 곧 하느님은 나를 태어나게 하시고, 먹여주시고, 찬양하게 해주고, 결혼해 자녀를 주시고, 찬양 도구로 계속 성원해주시는 분이다.
하느님은 진정한 나의 부모님이다. 나를 움직이는 분이자, 더욱 열을 올려 기도하고, 더 알고 대화해야 하는 분이다. 그분 안에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계획하며 그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주님을 찬양할 때 원래 나에게 바랐던 주님의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양가 부모님이 팔순을 앞두고 모두 힘들어하신다. 사랑을 그리워하며 인생 후반부를 연주하고 계신다. 자식으로부터 독립하고자 날갯짓을 하시지만 여의치 않다. 모두가 날고 있지만 방향을 표류한다. 하느님이 계시는데 잘 못 보시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인생 후반, 나에게는 주님 사랑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받고자 원하는 것은 버려야 한다. 아무리 가슴 속으로 사랑을 요구해야 사실 소용없다. 그 사랑은 하느님에게만 있기에 사랑의 원천인 그분을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생활성가를 만들고 부르고, 전례 안에서 찬양하는 사람으로서 하루를 사는 나에게 주님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직업과 적성, 실력과 건강 등 지원을 잘 받는 몇 안 되는 행운아다. 이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하느님이다.
이제는 준비해야 한다. 가질 것보다는 내어놓아야 할 것이 많다. 더 많이 아픈 이들을 보고, 슬픈 이들을 볼 것이다. 함께할 날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 원하든 원치 않든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많이 주신 만큼 청구하시는 주님 말씀을 믿고, 함께 하는 평화신문 독자들에게도 주님 사랑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아주 소박히 진실히 깔끔하게.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