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 ‘방문객’ 중에서)
지난해 교황님이 우리나라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더구나 방한 첫날 청와대 방문에 이어 제가 일하는 서울 중곡동 주교회의를 몸소 찾아오신다니 무척 기뻤습니다. 교황님에 관한 책들을 구해 읽어보며 정현종 시인의 시구를 떠올렸습니다.
위로부터 경호 문제 등을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들었지만, 몰래 피켓을 만들고 “파파,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는 노래도 연습하고, 교황님을 기쁘게 해드릴 궁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2013년 5월호 경향잡지에 실었던 글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교황님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시절 서울성가소비녀회 설립 50주년을 축하하며 보내신 감사 편지였습니다. 교황님은 교구 병원에 원목 수녀들이 필요해 당신이 좋아하시던 성인과 성녀에게 전구를 청하셨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1993년 4월 15일 한국에서 서울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테오도로 알바레스 병원에 파견되었습니다. 교황님은 편지에서 그날의 감동적인 사연을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나는 요셉 성인과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에게 그동안 열심히 구해온 은혜에 대해서 수녀님들의 도착과 더불어 한 가지 표징을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흰 장미 한 송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나는 흰 장미 한 송이를 보내 달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수녀님들이 공식적으로 병원에 도착하는 날, 병원의 임원들과 직원들 그리고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함께 모여 간단한 종교적 환영식을 갖고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기도를 하고 수녀님들에게 축복을 주었을 때, 나는 제대의 아주 작은 꽃병에 딱 한 송이의 꽃이 꽂혀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흰 장미 한 송이였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이렇게 일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이 사연을 기억하고 교황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흰 장미 한 송이를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교황님이 주교님들을 만나고 주교회의를 떠나시는 순간, 저는 용기를 내어 “파파!” 하고 교황님을 불렀습니다.
그러고는 흰 장미와 테오도로 알바레스 병원을 기억하시느냐고 짧게 말씀드렸습니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듣던 교황님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환하게 웃으시고는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저는 준비한 꽃을 드렸습니다. 그 장면이 교황청 전속사진사의 카메라에 잡혀 다섯 장의 연속 사진으로 제 손에 돌아왔습니다.
전례력을 보니 3월 13일이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2주년 기념일입니다. 올해는 한국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Ad Limina)이 있는 해라서,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도 3월 9~13일 로마 현지에서 열립니다.
11일에는 함께 간 한국 신자 대표 순례단이 교황 방한에 대한 감사 의미로 교황님을 알현합니다. 이 기회에 저도 한번 로마에 가고 싶었지만 목돈이 들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 훗날로 미루었습니다.
지난해 여름 그날, 제가 들었던 이탈리아어로 된 환영 문구가 적힌 피켓을 꺼내 보며 멀리서 교황님께 인사를 전합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