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야/ 바람이 불면 그대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판잣집이 늘어선 신천동 철로 연변/ 우리는 그 길을 얼마나 자주 거닐었던가./ 가난하면서도 아름답던 시절,/ 유치환의 ‘행복’이나 김광균의 ‘언덕’을 외면서/ 민들레 뿌리 같은 우리의 의지를 다지지 않았던가.//…//
아팠지만 추억은 왜 그리도 아름답게 물드는지/ 지금은 각자 삶이라는 짐을 지고/ 객지로 객지로 흩어져 버렸지만,/ 친구야 가끔은 우리가 거닐던 철로 연변/ 그 어렵던 시절이 못 견디게 그립다.”(김종목, ‘추억’ 중에서)
서부 경남의 오지 거창에서 태어나 10대를 대구에서 보내고, 광주에서 20대를 보냈습니다. 30대 이후 지금까지 서울이라는 대도시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끔 옛날의 인연들을 만나는데, 대개는 여럿이 술잔을 기울이며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라 깊은 생각이나 고민을 나누기에는 마땅치 않아 조각 맞추기를 하듯 추억을 꺼내며 이야기를 하다가 끝이 납니다.
익명의 사람들이 북적대는 거리를 걷다 보면 낯선 얼굴만 가득한 도시, 그래도 이유 없이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추억을 공유한 벗들이 있다는 게 고맙고 기쁘고 놀랍습니다. 자정 무렵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흔들리는 만원 버스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투명인간인 양 휴대전화에만 눈길을 주고 있습니다.
닭이 알을 깰 때에,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려고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한자어로 ‘줄’,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고 합니다. 알 속에 갇힌 병아리 신세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던 해가 2005년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속한 주교회의라는 교회 직장도 ‘도시성’이라는 현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듯 보였습니다. “한정된 장소에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복닥거리고 살아가게 되면 서로 이방인이 되어버리고 만다.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고 즉흥적으로 반응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우르바니즘(Urbanism)이란 말이 떠오른 해였습니다.
“구성원에서부터 상호 관계에 이르는 모든 상황이 즉흥적이고 유동적이다. 신뢰 체계가 불안정하다. 진정한 ‘우리’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때였습니다. 이듬해인 2006년 5월에 사무총장으로 부임하신 배영호 신부님은, 마치 어미 닭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품어주고, 껍질을 깨려는 노력을 하셨다고 봅니다.
“신부님의 부리질로 우리가 알을 깨고 나와 젖은 눈을 뜨고 ‘반짝’ 별빛을 보면 좋겠습니다”라며 축사를 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신부님이 부임하시기 전인 2005년 6월에 경향잡지 편집장으로 전보 발령을 받고, 2006년 3월에 부장으로 승진하였으니, 배씨라는 종씨 신부님 덕을 본 것은 아니었기에 빈말이나 아부가 아닌 진심을 담아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지난 2월 16일 경향잡지 편집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고는 백의종군하듯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이 배 신부님이었습니다. 세월의 철마가 남은 삶을 또 어디로 실어 갈지 모르지만, 새로 맡은 일을 힘껏 열심히 하려고 마음을 다잡고 일을 합니다. 그래도 친구가 그립고 술이 고픈 날이 있습니다. 신부님, 요즘도 많이 바쁘신가요?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