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에 걸쳐 저는 미국에서 5년 정도 살았습니다. 첫 번째는 1년간 미국 동부 볼티모어에서, 그리고 두 번째는 하와이에서 4년 가까이 지냈습니다. 물론 두 번 다 유학을 위해서였지만, 그 기간 중 가장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은 그곳 한인 천주교회 신자들과 함께 지낸 일들입니다.
무엇보다 유학생으로 잠시 와서 지내는 저와 우리 가족을 매사에 배려하고 많은 도움을 준 그분들의 사랑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랑과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저 또한 나름대로 신부님과 본당 신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찾아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민 생활을 하는 현지 신자들보다 자유롭게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저는, 신부님의 이런저런 심부름은 물론 신자 가정 자녀들의 교육 상담과 신자 가족 중에 환자가 생겼을 때 앞장서 병원 다니는 일을 많이 도왔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부활절이나 대림 시기에는 얕은 지식과 신앙 체험으로 성당에서 신자들에게 강의도 했고, 특히 하와이에서의 유학생활 마지막 해에는 혼자서 여러 가지 사목 활동에 바쁘신 신부님을 돕는다는 이유로 성인 교리반까지 맡아 1년 동안 20여 명을 영세시킨 일도 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그대로 실천해 보여준 셈인데, 전문 교육을 받는 지금의 교리교사들이 들으면 기가 찰 일이지요.
그러나 저의 이런 용감한(?) 행동에 나름대로 논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첫째는, “가르치면서 배운다”(Learning by teaching)는 교육 원리에 따라 미리 교리책을 읽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신부님께 여쭤가며 가르치면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고, 둘째는 적어도 제가 아는 정도의 하느님 사랑과 예수님의 삶, 그리고 교회 역사 등을 소개할 수만 있어도 가톨릭 신자로 출발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제 논리였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모두들 저와 함께 기본 교리를 배워 가톨릭 신자가 된 것에 대해 그렇게 만족하고 자랑스러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살면서 그때만큼 제가 큰일을 해냈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드뭅니다.
저의 이런 무자격 교리교사 행적은 귀국해서도 한 차례 더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서울 강남에서도 가장 큰 본당 중 하나가 된 우리 본당이 처음 설립되던 1980년대 초의 일입니다. 신자들 모두 한마음으로 새 성전 짓는 일에 힘을 모으고, 이 일을 계기로 새로운 신자들을 많이 영입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우연히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당시 우리 본당 예비신자 교리를 위해 미아리에 사는 타 본당 교리교사 한 분이 매주 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저는 잠시 고민을 한 끝에 미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교리반을 제가 한 번 맡아보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물론 국내에서의 제 교리교육은 그 한 번으로 끝이었지만, 그때 저는 가톨릭 신자가 거의 없던 저의 처가 식구 10여 명을 모두 제 교리반에 출석시켜 30여 명의 다른 예비신자들과 함께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이 일이 하느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만 싶습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