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90. 하느님의 침묵

맹광호 이시도로(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수필가)
맹광호 이시도로(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수필가)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꽤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며, 저에게 “얘야! 정말 하느님이 계시긴 한 거니?”라는 질문을 해 오셨습니다. 의외의 질문에 깜짝 놀란 저는,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아니, 어머니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고 말끝을 흐리자, 어머니는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했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도 들어주시는 것 같지가 않아서 그렇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손자 손녀들 공부 잘하게 해 달라는 기도에서부터 대학을 마친 아이들에게는 좋은 직장을 구하게 해 달라는 기도, 그리고 모두들 건강하게 해 달라는 기도 등 주로 가족들을 위해 매일 열심히 기도해 보지만 그렇게 되는 것 같지도 않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얼떨결에 “이 세상 그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느님이 무슨 수로 단번에 들어 주실 수 있겠어요? 오래오래 기도하시면 순서에 따라 어머니 기도도 들어 주시고 그래서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예요” 하고 얼버무렸지만, 사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침묵을 답답해 하고 서운해 하는 사람이 어디 우리 어머니뿐이겠습니까?

이런 ‘하느님의 침묵’에 대해 가장 극적으로 문제와 해답을 제시한 책 가운데 하나가, 일본의 대표적 현대 소설가이며 가톨릭 신자인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의 「침묵」이라는 소설입니다. 1966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17세기 일본의 천주교 박해 참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지속적으로 읽히고 있는 작품입니다.

신학교 은사이면서 일찍 일본 선교에 나선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문을 듣고, 제자인 로드리고 신부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에 잠입해서 활동하지만 결국 관헌들에게 붙잡혀 그 자신이 배교하게 된다는 파란만장한 얘기를 담은 소설입니다.

자신을 배교시키기 위해 신자들을 혹독하게 고문하고 죽이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로드리고 신부가 관헌들이 시키는 대로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를 발로 밟고 지나감으로써 배교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죄책감과 고통을 견디지 못한 로드리고 신부가, “주님, 저는 당신이 이런 상황에도 침묵만 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합니다”라고 하늘을 향해 절규합니다. 그때 로드리고 신부에게, “로드리고야! 나는 결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너와 함께 아파했고 괴로워하고 있었단다”라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여기서,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고문을 받으며 비참하게 죽어가는 신자들을 모른 체하던 하느님을 원망하다가 로드리고 신부를 위로하는 이 말에 오히려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신뢰하게 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힘들고 고통스러워 할 때, 곁에서 우리보다 더 아파하며 괴로워하는 하느님이 계신다는 인식!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이보다 더 큰 위로와 희망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