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겨울 내내 저는 봄을 기다렸습니다. 본격적인 겨울도 오기 전부터 손과 발이 차게 느껴져 병원엘 갔더니 혈액 순환이 나빠져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선 혈액 순환에 도움을 준다는 약을 처방받아 먹어 보기도 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봄이 와서 날씨가 따뜻해져야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이 온다는 ‘확실한’ 사실이 저에게는 큰 희망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손과 발의 찬 기운도 조금은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희망을 갖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힘이 된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물론 우리의 모든 희망이 마치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그렇게 확실한 것들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전혀 실현되지 않을 허망한 꿈을 희망으로 갖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매일매일 무엇인가 절실하게 희망하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그렇게 해서 불가능했던 희망이 이루어지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 중국의 사상가 양계초(梁啓超, 1873~1929)는 “희망이 곧 힘이다”라고 했습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항상 더 나은 미래를 예상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지난해 8월, 무덥던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처럼 잠시 한국을 다녀가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희망은 하느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말하자면 희망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주신 선물인데, 그 선물을 선물로 받아 잘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마지막 희망은 역시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를 굳게 믿는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암 수술을 받고 여러 해 투병을 해오신 시인 이해인 수녀님이 어느 개신교 목사와 많은 청중들 앞에서 삶과 죽음에 관한 일종의 ‘토크 쇼’를 하셨다는 기사와 내용을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거기서 수녀님은 ‘삶이 목적이 아니고 순례의 길’이라고 하시더군요.
“여러 영성가(靈性家)들의 저술에서도 인생을 ‘임시 숙소’로 표현했듯, 사람에게는 죽어서 돌아가야 할 고향이 마땅히 있어야 하는 쪽으로 믿으니 위로가 됐다”고 하셨습니다. 수녀님과 대화를 나눈 목사님도 “인생이 순례자라면 세상을 목적지로 삼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걸어야 할 길이 분명해진다”며 “세상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이 걷는 길과, 순례자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걷는 길은 분명 다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느님께서 돌보아 주실 것에 대한 희망으로, 죽어서는 하느님이 계신 ‘고향’으로 우리를 불러 가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이겠지요.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희망을, 겨울이 가면 반드시 봄이 온다는 사실만큼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