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94. 며느리의 영세

맹광호 이시도로(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수필가)
맹광호 이시도로(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수필가)

우리 외며느리는 일본 국적을 가진 한인(韓人) 4세입니다. 아들이 그녀를 만난 것은 박사 과정 공부를 위해 일본 후쿠오카로 유학을 떠난 지 5년째 되던 2012년 초의 일입니다. 혼자 외롭게 지내는 아들이 안쓰러워 아내와 제가 서울에서 마땅한 짝을 찾아보겠다고 했을 때도 공부가 다 끝나야 결혼을 하겠다고 우기던 아들이 어느 모임에서 그녀를 만나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아들 말로는 두 사람의 만남이 하느님께서 점지해(?) 주신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이유인즉슨, 아직 생존해 계신 그녀 외할머니를 빼고는 가족 모두가 우리말을 못하는데 유독 그녀만 한글을 쓰고 읽으며 말도 곧잘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말을 잘 못하는 엄마와 아버지를 위해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고 까지 했습니다.

평소에도 아내와 저는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라면 결혼하는 데 다른 조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가톨릭 신자면 더없이 좋겠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었습니다. 특히 서초동본당 설립 초기에 구역 활동을 많이 했던 아내는, 설사 우리 가족이 도중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다 해도 아들 결혼만은 꼭 그곳에서 시키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들의 여자 친구는 당연히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가톨릭 신자 비율이 인구의 10%나 되는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신자끼리 결혼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그 비율이 0.4%도 안 되는 일본에서 신자를 만나 결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 사실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요.

그렇다고 한국처럼 동네마다 성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성인 교리를 하는 성당이 거의 없는 일본에서 서둘러 세례를 받으라고 할 수도 없어 아쉬워만 하고 있던 어느 날,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녀가 집에서 전철로 30분도 더 걸리는 성당에 찾아가 신부님께 직접 1 대 1 교리교육을 받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녀가 교리공부를 하는 동안 저도 바빴습니다. 우리보다 200년이나 앞서 전래된 일본 가톨릭 교회의 역사와, 역시 우리보다 길고 참혹했던 일본 박해 시대에 관한 얘기를 몇 차례에 걸쳐 메일로 알려주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신자 수가 적지만 일본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교회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특히 두 사람이 있는 후쿠오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일본의 가톨릭 도시, 나가사키에 가서 영세 전에 그곳에 있는 150여 년 역사의 오우라성당과 순교자 기념관 등을 순례하도록 자세한 안내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그해 성탄절에 ‘로사’라는 세례명으로 영세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성탄절 영세식인데도 그날 세례성사를 받은 사람이 그녀 한 사람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성당마다 매년 많은 성인 영세자를 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큰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인지 새삼 자랑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로사가 세례를 받고 한 달이 지난 2013년 1월 26일, 두 사람은 서초동성당에서 세 분의 사제를 모시고 아름답고 성스러운 혼배 미사를 드렸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웅장한 성당 혼례식에 일본에서 온 로사 가족 친지들이 넋을 읽고 감탄해 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