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28. 성당은 나의 쓰레기통

이대현 요나(문화체육관광부 홍보협력관)
이대현 요나(문화체육관광부 홍보협력관)

나는 ‘걸어서’ 성당에 간다. 특히 주일 미사에 참례할 때는 꼭 그렇게 한다. 성당이 아주 가까워서도, 주차장 시설이 열악해서도, 가는 길이 쾌적하고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서도 아니다. 집에서 서울 문정동성당까지는 걸어서 15분이 걸린다.

지하 주차장도 꽤 넓고, 성당이 주택가에 포근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미사 시간이면 이웃 주민들의 집 앞 주차 인심도 넉넉하다. 서울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성당까지 가려면 자동차 매연을 마시며 횡단보도를 몇 번 건너야 하고, 아파트 단지와 상가를 지나야 한다.

그런데 굳이 걸어서 성당에 가는 이유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미사만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시간에 나는 ‘묵상’을 한다. 한 주간의 생활과 생각,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고, 버려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한다. 차를 타고 가거나, 허겁지겁 뛰어가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천성이 게으른 탓에 하루하루 반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그리고 시간만 나면 온갖 망상과 욕심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하는 나에게 그 ‘묵상’의 시간이 없다면, 미사 역시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시작이 중요하다. 때론 그것이 운명이 된다. 16년 동안 아내의 권유와 사정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다 10년 전 어느 봄날, 나는 처음 ‘내 발’로 혼자 걸어서 성당을 찾았다. 나에게는 ‘주님’이 마지막 선택이었다.

모함과 배신과 그에 따른 상처와 분노. 누구도, 심지어 아내조차 나의 진심과 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모습에 외롭고 슬펐고 참담했다. 아무도 없었고, 어디에도 내가 기댈 곳은 없었다. 그래! 이 세상에 없으니, 마지막으로 하느님한테 가보자.

한 가지 생각에 골똘하면, 눈도 마음도 그렇게 되는가 보다. 텅 비고 어두운 성당에 혼자 앉아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노려보았다. 기도가 아니었다. 기도할 줄도 몰랐다. 무턱대고 나의 고통과 고독과 원망과 미움을 좀 없애 달라고 하소연했다. 그때 환청처럼 들린 한마디. “그럼, 네가 가진 것 다 내게 주고 가거라.”

그 말을 듣고 나서 보니 성당 앞 벽에 큰 잔이 그려져 있었다. 나중에 그것이 ‘성작’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때에는 영락없는 쓰레기통이었다. “저기에 버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성당은 나에게 쓰레기장이 됐다. 성당 가는 길은 그 쓰레기를 빠짐없이 모아 가져가는 시간이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걸어가야만 남김없이 모을 수 있다. 그렇게 한 주간의 쓰레기를 미사 시간에 남김없이 다 버리고 나서 ‘영성체’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는다.

성당만이 그런 곳이 아니다. 용문사의 주지 스님도 불공드리러 온 신자에게 “여기 절에 다 버리고 가라”고 말했다. 신앙이란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닌, 쓸데없이 짊어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내려놓는 일이며 교회와 사찰은 그 버린 것을 담아주는 쓰레기장이란 생각은 나만의 억지는 아닌 모양이다. 처음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쓰레기만 버리기가 염치가 없어 가끔은 감사의 마음을 주고 온다.

문제는 그것이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쓰레기가 생기지 않으면 좋으련만, 성당을 나서자마자 내 마음에는 다시 자비보다는 미움이, 나눔보다는 이기심이, 겸손보다는 오만이, 용서보다는 분노가 먼저 자리 잡는다.

일주일이면 그 양이 차고 넘친다. 그러니 “주님, 어리석음을 평생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 어리석은 인간은 죽을 때까지 걸어서 성당에 가면서 쓰레기를 모으고, 그것을 주님 성전에 버리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부터 주님이 그것을 허락하셨으니.”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