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절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고난과 유혹을 이겨내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수난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생각한다. 기도와 회개, 절제와 금식으로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자신을 겸허히 되돌아본다.
솔직히 나에게 사순절이 특별하지는 않다. 언제나 사순절처럼 신앙생활 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유난을 떨기가 싫어서다. 그러나 이번만은 다르다. 마음속에서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무도, 아무것 없는 광야로 나서기 전 예수님을 생각했다.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한다.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에는 기쁨도 있지만, 불안도 있다. 삶에 중요한 선택일수록, 결과에 대한 두려움 또한 그만큼 크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더 나은지 미리 다 알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으랴.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내일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능력은 주시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베이비붐 세대’는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빵’일 것이다. 이미 직장을 잃은 사람은 고령화로 길고 긴 남은 삶을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언제 그만두고 거리로 내몰릴지 몰라 두렵기만 하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아파트 한 채 달랑. 자식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절벽 앞에 선 청년들이다.
그들에게 나의 선택은 ‘사치’일지 모른다. 요즘 같은 때에, 임기가 1년은 확실히 보장된, 멀쩡하게 월급 주는 공직 자리를 그만두고, 대학 강의 조금 하면서 글 쓰는 춥고 황량한 광야로 나서겠다는 것이. 난들 왜 그것을 모르며, 두렵지 않았을까. 당장 수익이 절반, 아니 그것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 뻔한데. 나 역시 가진 것이라고는 아파트 하나에, 대학 다니는 아들이 둘이나 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수백 번을 자문해도 답은 뻔했다. 정말 하고 싶은 것,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것, 앞으로도 즐겁게 계속할 수 있는 것, 그 속에서 나의 존재를 찾을 수 있는 것. 그런데 곧바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족이 당할 불편이 마음을 짓눌렀다. 나의 선택이 곧 그들의 고통으로 이어져 원망으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기우였다. 오히려 정반대 일이 벌어졌다. 어쩌면 스스로 포기의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나를 아내와 아들이 일으켜 세웠다.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진정 당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어차피 1년 후에는 다른 것을 선택해야 하잖아요. 경제적인 문제에만 집착하지 말고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면 시작하세요.”
그랬구나. 나만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나만 오로지 빵 걱정에 매달려 있었구나. 어쩌면 나의 길고 긴 고민은 스스로 포기의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나의 추측은 완전히 틀렸다. 예수님은 광야로 나가시는 데 주저하지 않으셨고, 40일이나 그곳에 머물면서도 유혹에 빠지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그 선택이야말로 당신께서 가장 원하던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을 어설프게 흉내 낸 나도 이번 사순절에는 가장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광야에 섰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고, 또 믿기에.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