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33. 신학원 풍경 

이백만 요셉(캄보디아 하비에르학교 홍보대사)
이백만 요셉(캄보디아 하비에르학교 홍보대사)
“교수님…, 예수님은 왜 결혼을 하지 않으셨나요? 어떤 소설에는 부인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공관복음 수업 시간이었다. 열성 학구파 자매님이 손을 번쩍 들더니,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다소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교실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교수님이 심호흡을 한번 내쉬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세요?”
그 질문에 그 대답! 학생들 모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교실 안에 조성됐던 묘한 긴장감이 화롯불에 눈 녹듯 사라졌다.
자매님이 몰라서 이런 질문을 했을까? 믿음이 약해서 물었을까? 아니다. 더 확실히 알기 위해, 더 강한 믿음을 갖기 위해, 보다 근사한 논리를 습득하기 위해, 저명한 신학박사이자 신부인 교수님에게 용기를 내어 질문을 던진 것이다.
교수님은 자매님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듯 ‘준비된 대답’을 술술 풀어나갔다. 고대 근동의 결혼 풍습, 예수님 독신의 의미, 이단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 교수님은 설명을 마친 다음, 한마디 거들었다. “이번 학기 학생들은 질문이 무척 날카롭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학생들이 또 한 번 까르르 웃었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덕담인 줄 뻔히 알면서도 다들 좋아했다. 마치 초등학교 교실 풍경을 연상케 했다.
교수님들도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기초적인 개념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철학 시간이었다.
“신학을 배우려 오셨지요?” “네~!” “그런데…, 딱딱한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하지요?” “…….”
다들 할 말을 잊은 채 교수님만 쳐다봤다. 곧이어 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 최고 신학자들과의 만남, 자유로운 질문, 진지한 토론, 그 속에서 깊어가는 신앙심…. 이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난해 3월 가톨릭교리신학원에 입학했다. 주변 친구들이 아직도 의아해 한다. 왜 그곳에 갔느냐고 묻곤 한다. 마땅히 해 줄 말이 없다. “지은 죄가 많아서…”라고 눙쳐버린다. 1학년 때 구약성경을 가르쳤던 안소근 수녀님은 본인의 저서 「성경 펼쳐 읽기시편」에 저자 사인을 해주면서 이런 글을 써주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 들여라.” 그 친구들이 이 ‘맛’을 어떻게 알겠는가.
신학원에 모인 40여 명의 학우는 누구인가.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의 백전노장들이다. 대부분이 환갑을 넘나드는 나이다. 손주를 둔 할머니 할아버지도 적지 않다. 무엇을 바라고 여기에 왔는가. 승진? 출세? 돈? 권력? 명예? 어느 것도 아니다. 인생 2라운드를 ‘그분’과 함께 보람있게 살고 싶은 마음, 그것뿐이다. 얼마나 선한 집단인가.
올해 개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전례에 관한 한 엄격하기 그지없는 수산나 자매님(전례부장)이 그날따라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뭔가 중요한 역할을 맡기려는 모양이었다. “요셉 형제님, 공동체 미사 때 보편 지향 기도 좀 해 주셔요! 신학원 학우들을 위해서….”
“네!” 대답은 쉽게 했지만, 기도문 작성은 쉽지 않았다. 한참 고민했다. 시편 42장이 번뜩 떠올랐다. 학우들 모두가 영적인 갈증에 목말라하는 암사슴들 아닌가!
“은총의 주님,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가톨릭교리신학원 학우들이 당신의 은총을 목말라하며 이곳 작은 배움의 공동체에 모였습니다. 불쌍한 저희가 당신의 가르침을 온전히 깨달아, 졸업할 수 있도록 은총의 단비를 내려 주소서.”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