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쏨~ 어쁘레아~ 꾼쁘레아~ 찌어엄짜~ ~ ~”
지난 3월 하순, 서울 신촌 뒷골목 삼겹살집. 식당 종업원이 음식을 식탁 위에 차려놓자, 그 뜻을 도저히 알 수 없는 ‘해괴한 노래’를 20여 초 부른다. 식당 종업원은 무슨 사이비 종교 신자들이 주문을 외는 게 아닌가 하는 눈초리로 힐끗 쳐다보며 주방 쪽으로 몸을 옮긴다.
노래를 부르고 난 후 성호경을 긋는 것을 보아서는 가톨릭 신자 같기도 한데…, 궁금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들은 누구였나? ‘크메르 바이러스’ 환자들이다. 크메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여러 명이 모여 식사를 할 때 이 ‘망측한 노래’를 함께 부르는 버릇이 있다.
2015년 1인당 국민소득 1100달러의 가난한 캄보디아. 크메르(Khmer)는 캄보디아의 옛 이름이다. 현지인들은 캄보디아라는 말보다 크메르(현지 발음은 ‘크마에’)라는 말을 더 즐겨 쓴다. 외국인들에게는 크메르 하면, 킬링필드로 악명을 떨친 ‘크메르루주’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캄보디아에 잠깐 놀러 왔다가 떠나지 못하는,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스갯소리지만, 이들이 바로 자칭타칭의 ‘크메르 바이러스’ 환자들이다. 무엇에 반했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어린아이들이 눈에 밟혀서…”라고 말을 떨군다.
캄보디아 아이들은 유독 눈이 예쁘다. 옥구슬처럼 둥그런 까만 눈동자와 백합꽃 같은 맑은 웃음…, 얼굴은 비록 가난에 찌들어 흙먼지로 범벅되어 있을지라도 눈빛만은 영롱하다.
진흙물속에서 피어나는 어린 연꽃 봉우리 같다. 사랑일까, 연민일까, 측은지심일까. 이런 어린이들이 방실방실 웃으면서 품에 안기기라도 하면, 있는 것을 모두 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캄보디아의 희망을 본다.
그날 저녁 모임은 캄보디아에서 귀국한 ‘젊은 환자’ 두 사람을 위한 자리였다. 함께 뒹굴고 살았던 ‘환자들’이 화제가 될 수밖에! 근황을 묻고 안부를 주고받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장애인들에게 디자인을 가르친 디자이너, 장애인들이 만든 물품을 판매한 마케팅 전문가, 한국 최고의 직장을 그만두고 캄보디아에 빠져버린 젊은이, 유력 일간지 사진기자를 했던 사진작가, 미국 명문대 박사 출신의 과학자, 잘 나가는 내과 전문의, 그리고 취직을 1년 미루고 캄보디아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마리 부부(프랑스) ….
식사 전 기도(노래)를 캄보디아식으로 할 때부터 알아봤다. 권커니 잣거니 하며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 흘깃 쳐다보니 갓 귀국한 자매님의 두 뺨이 흥건히 젖어있는 게 아닌가.
“어이구, 완전히 중증 환자가 되어 돌아왔구먼!” 누군가 위로한다며 던진 말에 모두 빵 터지고 말았다. 그래도 자매님은 눈물을 훔치며 행복해 했다. 크메르 바이러스에 일단 감염되고 나면 이처럼 대책이 없다. 악성 바이러스다.
환자들은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행복해한다. 왜일까?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진단이 그럴듯하다. “서울 지하철을 타면 정말 답답해요. 뭐가 그리 근심들이 많은지…, 다들 심각한 표정이잖아요. 캄보디아는…, 어렵게 살지만 웃음이 있잖습니까.” 캄보디아 생활 18년의 결론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크메르 바이러스 환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조용히 실천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들’(마르 1,11)이 아니겠는가.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