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2013년 7월 15일부터 8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출발 기점인 프랑스의 ‘생 장 피에 드 포르’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한국에서 온 순례자는 모두 우리 부부 담당이었다. 밤 11시 이후 도착하는 이는 숙소까지 안내해 주기도 했다.
외교부 대사를 지낸 한국인 부부가 순례자 사무실에서 친절을 베풀며 봉사하는 모습이 순례자들에겐 신선한 충격과 감동이었나 보다. 어떤 유럽인 순례자는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 첫 장에 우리의 이름을 적고 사인을 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기념 촬영을 요청하는 이, “어떻게 이곳까지 와서 근무하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묻는 이도 있었다. 일일이 설명해 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
7월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순례하는 이들은 여름 방학을 이용한 대학생이 대부분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순례자 모두가 아들딸이나 다름없었다.
순례자 사무실의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는 피레네 산맥을 넘는 험난한 ‘나폴레옹 루트’에 대한 한국어 안내서를 발간하는 거였다. 순례자 사무실 관계자는 “한국인 순례자들이 악천후 때 사무실에서 권유하는 우회로를 가지 않고 해발 1430m 피레네 산맥의 고지를 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부상을 당해 구급차에 실려 다시 순례자 사무실로 돌아오는 순례자들이 있어 한국 정부나 주프랑스 한국 대사관에 필요한 조치를 해주길 요망하는 글을 보내면 한국 외교부에서도 “묘안이 없었다”고 답한다고 했다.
험난한 나폴레옹 루트는 순례자 협회가 신경을 많이 쓰는 구간이다.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독일어로 된 자세한 안내서는 순례자 사무실에 비치돼 있었지만, 한국어 안내서는 없었다. 한국인 순례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 또한 순례자 협회의 중요한 임무였다.
우리 부부는 한국어 안내서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한국어로 번역하고 아내는 노트북으로 번역본을 편집했다. 순례자협회 사무실 컴퓨터에는 한글 자판이 설치돼있지 않아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마침 도착한 가야고등학교(경남 김해) 지리 선생님과 여학생의 도움으로 밤늦게 한글 자판을 설치할 수 있었다. 안내서를 인쇄할 때는 중년의 한국인 순례자도 나타나 우리를 도와줬다.
그리고 프랑스인 봉사자의 도움까지 합쳐져 한국어로 된 안내문이 인쇄돼 나왔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2층 사무실이 떠들썩해졌다. 모두가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특히 함께 한 한국인 순례자들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더 두드러졌다. 이튿날 일찍 길을 나서야 할 한국인 순례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보람을 선물해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순례자협회 책임자가 감사 전화를 걸어왔다. 앞으로 다른 외국어 안내서와 함께 순례자사무소에 비치하면 한국 순례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나보다는 아내가 느끼는 보람이 더 큰 것 같았다. 우리의 순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순례와 순례자 봉사 활동은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하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길을 또 걷고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