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아침이 밝았다. 어김없이 매일 아침 떠올라 이 세상을 고루 비춰주는 태양의 한결같음, 그 너그러움을 바라보며 지난 9월, 홀로 프랑스로 떠나 그곳에서 느낀 감동을 떠올린다.
지난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여름 세미나에서 권녕숙 선생님께서 현대 교회미술의 훌륭한 사례로 프랑스의 아시, 롱샹 성당 등을 소개해주셨는데, 막연히 언젠가 가보리라고만 생각했던 이 명소들이 너무나 강렬하게 나를 불렀다. 무언가에 홀린 듯 직접 가서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오전 7시 48분, 파리 리옹역에서 출발해 앙시역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생제르베레뱅-르파예라는 정말 이름도 어려운 프랑스의 작은 시골 역에 도착하니 오후 2시 56분이었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역에서 5km 떨어진 작은 호텔 방을 예약했다.
그저 시골에 있는 작은 성당 하나를 보기 위해 이 긴 기차 여행을 떠난 것이다. 잔뜩 들뜬 마음으로 작은 시골 역에 도착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연거푸 감탄사가 나왔다.
스위스의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해맑게 뛰어다닐 듯한 풍경. 이곳은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지역의 몽블랑과 샤모니 사이의 골짜기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경, 쾌청한 가을 하늘과 축복의 햇살이 찬란하게 눈부신 순간이었다.
‘역에서 호텔까지 5km 정도야 산책 겸 룰루랄라 걸어가면 되겠지’하고 생각한 것은 큰 실수였다. 5km는 평지가 아니라 산 위에 있는 호텔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어이없어하는데 호텔 위치를 물으러 들어간 카페에 손님으로 온 친절한 동네 아저씨의 차로 숙소까지 편히 갈 수 있었다.
마을 주민 인심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곳에 무슨 연유로 왔는지 묻길래 “아시 성당을 보러왔다”고 신나게 대답했다. 호텔 앞에 내려주고 자기 집으로 향하는 아저씨가 너무 고마워 팔이 아프도록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작지만 깨끗한 숙소는 ‘호텔’이라기보다는 여인숙이었다. 큰 개가 다가와 반겼다. ‘이곳은 차를 태워준 아저씨도 개마저도 자연의 너그러움을 닮아 이리 열려있구나’ 하며 개를 쓰다듬고 고개를 들었다. 이때 눈앞에 한 4평 남짓해 보이는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작은 성당이 서 있었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산자락에 있는 너무 작은 장난감 같은 성당. 그 작은 몸체가 가을의 따스하고 아름다운 햇살을 가득 받아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작은 성당에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기운은 하느님의 축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성당으로 다가갔다. 대리석 판에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고통의 성모님, 우리를 보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리는 프라츠 주민들이, 1944년 8월 4일”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성당 문고리를 돌려보니 닫혀 있어 작은 창으로 내부를 열심히 들여다봤다. 그때 이 동네 할아버지가 다가 와 엄청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들이 이 마을을 쳐들어왔을 때 신부님께서 레지스탕스들을 숨겨줬어요. 나치들은 그들을 고발하지 않으면 이 마을 전체를 불태워버리겠다고 협박했지요. 하지만 신부님은 끝까지 굴하지 않으셨고 기적적으로 나치는 아무 해를 가하지 않고 이 마을을 떠났어요. 그래서 성모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이 작은 성당을 세우게 된 것이지요. 저도 그때 이곳에 있었어요.”
순간, 갑자기 쏟아진 내 눈물의 의미를 깨달았다. 1940년대 성모님이 베푸신 놀라운 기적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이 마을을 굽어살피고 있었다. 이들에게 그 작은 성당은 성모님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언덕 위에 서서 이들을 보호해주고 사랑해주시는 거룩한 어머니!
서울에서 맞은 새해 아침…. 그 작은 성당의 기적을 떠올리며 내 마음에 성모님을 위한 작은 성당을 짓는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