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0. 우리의 믿음에 날개가 있다면

한수산 요한 크리소스토모 (소설가)
한수산 요한 크리소스토모 (소설가)

평생 글을 내 존재의 닻으로 알고 살아오면서 늘 생각했다, 산문은 뱀과 같다고. 날개를 달고 치솟을 수도, 너울거리며 날아오를 수도 없는 그것이 산문의 숙명이라고.

산문은 온몸의 비늘을 이 땅의 삶에, 하루하루의 현실에, 흘러갔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역사에 온몸을 비비며 꿈틀거리면서 기어 나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올 가을로 세례를 받은 지 스물네 해가 되었다. 스물네 해를 건너며 생각하는 것도 이 생각과 멀지 않다. 우리들이 붙잡고 살아가는 이 믿음도 뱀과 같지 않은가.

하루하루의 삶에 온몸의 비늘을 비비고 으깨가면서, 꿈틀거리며 구불구불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찬미 예수의 날개를 번득이며 날아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랴. 하루하루의 믿음이 쌓여서 어느 날 하늘로 치솟는 화려한 비상이 준비되어 있다면 더 무엇을 바라랴.

그러나, 산문도 신앙도 온몸을 꿈틀거리며 기어나가야 하는 숙명이라는 이 믿음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런 마음의 갈피를 뒤적이며 그동안 내가 꿈틀거리며 살아온 믿음의 자취를, 그 스물네 해를 더듬어 보려 한다.)

부끄럽게도 나는 예비신자 교리 시절을 두 번이나 거친 ‘가톨릭 3수생’이다. 두 번의 실패 끝에 겨우겨우, 그것조차 제대 앞이 아닌 허허벌판 산 위에서 세례를 받았다.

첫 번째 좌절은 타의에 의해서 찾아왔다. 서울을 떠나 살러 내려갔던 제주에서였다. ‘한수산 필화사건’이라고 말해지는 보안사령부에 압송되어 고문을 받는 사건이 내 영육을 갈기갈기 찢으며 덮쳐왔던 것이다. 제주 중앙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시작한 지 8주가 되었을 때였다.

고문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 온몸은 가짓빛이었다. 전기고문으로 타들어 간 몸은 검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육체는, 참으로 신비했다. 시간이 지나자 탄 살갗이 벗겨져 나갔다. 가슴이나 허벅지의 피멍은 안으로 스며들고…. 그렇게 새살이 돋았다.

그러나 영혼이 받은 상처는 걸레처럼 쓰러져 일어설 줄을 몰랐다. 다만 살았다. 벌레가 되어 기어 다니듯이 살았다. 그리고, 막막하게 기다리며 살았다. 그 암담한 세월이 지나가기를 기다렸고, 이 세상에 아무 뜻이 없이 살 수 있기를 기다렸고, 내 영혼에서도 새살이 돋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길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비쭉비쭉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던 신제주의 황량한 밤거리를 거닐자면 여기저기 어둠 속에서 빛나는 십자가가 바라보였다. 교회의 십자가들이었다.

그때 나는 무어라고 중얼거렸던가. 하느님, 이게 당신이 만드신 세상인가요? 참 잘도 만드셨습니다. 저기 국군보안사 지하 고문실도 당신이 만드셨나요? 그렇게 내 첫 예비신자 시절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몇 년 후 어느 가을, 나는 저녁 햇살이 빗겨드는 성당 복도에서 신부님을 만나고 있었다. 돌아가신 최석호 신부였다. 그때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내 영혼이 너무나 때 묻고 더럽고 너풀너풀 해져서 펄럭이는 것처럼 느끼며 살아갑니다. 생각 같아서는 제 영혼이라는 것을 벗어서 욕조에라도 집어넣고 부걱부걱 밟아가며 빨아 널고 싶습니다.

무엇이 제 발길을 이곳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부님, 도와주십시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