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근하기 위해 차를 몰고 나왔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신호도 많이 걸리고, 끼어드는 차도 많고, 난폭 운전자도 많아 짜증이 심하게 났다.
그때였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뒤에 차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학생이 차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 클랙슨을 울리지 않지만, 그땐 울리지 않으면 학생이 전혀 모를 것 같아 클랙슨을 눌렀다.
그러자 그 학생은 뒤를 돌아보더니 짜증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런 학생의 태도가 너무나도 맘에 들지 않았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뒤에서 차가 오는지도 모른 체 걷는 행동이 더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날은 화가 나 혼자 차 안에서 중얼대며 출근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치고서 동네 친구를 만나기 위해 퇴근길에 나섰다. 그날 회의 때 이야기 나눴던 새 코너에 필요한 음악을 들으며 ‘어떤 대사를 칠까. 어떻게 연기를 할까?’ 생각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어떤 차가 ‘빵!’ 하고 클랙슨을 울렸다.
순간 너무 놀라고 화가 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짜증스런 얼굴로 그 운전자를 쳐다봤다. 그 운전자 역시 짜증스럽게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앞질러 가는 차를 바라보며 ‘걷는 사람이 우선이지 어떻게 길거리에서 클랙슨을 울리지는 지 모르겠다’고 짜증을 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 앞에 걸어가는 학생을 향해 클랙슨을 울렸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참 이기적이었다. 운전할 때는 운전자 우선이었고, 걸을 때는 보행자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반대의 상황을 그것도 하루 만에 똑같이 겪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문재야, 나중에 나쁜 일 하면 너에게 나쁜 일이 생기고 네가 착한 일을 하면 너에게 착한 일을 생긴다.”
할머니 말씀이 사실이었다. 아침에 했던 나쁜 일이 저녁에 그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창피한 마음이 들었고, 더 시간이 지나니 착한 일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밥을 먹거나 운전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상황 속에는 관계가 있고 그 관계 속에는 선과 악, 갑과 을 등 수많은 선이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 그 관계 속에 남을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남을 생각하고 있을까. 결국, 그날 겪었던 일 중 서로가 웃으며 양보하거나 미안하단 말을 건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나도 잘못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역시 너무나 각박하게 사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참 신기하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노래를 들으며 걸어가고 있는 직장인 여성 뒤로 운전하며 조용히 따라갔다. 그런데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결국 못 참고 클랙슨을 울렸다. 그 여자는 내 차를 짜증스런 얼굴로 쳐다보면서 길을 비켜줬다.
내가 아닌데…. 하지만 괜찮았다. 그리고 차 안에서 웃으며 그 여자와 뒤차 운전자를 향해 혼자 말했다. “나중에 똑같은 일이 생깁니다. 그때 가서 짜증 내지 말고 평소에 남 생각 많이 하세요!”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