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1.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올 그날

한수산 요한 크리소스토모 (소설가)
한수산 요한 크리소스토모 (소설가)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불가사의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이 내 소년기이다. 눈 씻고 찾아보아도 집안에 절에 다니는 분이 없는데다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회가 없는 마을에서 자랐으니 말이다. 교회나 절만 멀리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가을에야 바다를 처음 보았다. 그것도 학교 대표로 뽑혀서(?) 백일장에 나가기 위해 똥물을 토할 정도로 버스 멀미를 하면서 찾아간 강릉에서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무슨 희귀동물이라도 보듯, 묻곤 한다. 그럼, 그동안 뭘 하셨어요?

종교적으로 그토록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내가 또 하나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나는 누구의 도움이나 인도 없이 나 혼자 스스로 성당을 찾아가 예비신자교리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무슨 이끌림이었을까.

두 번째 예비신자 시절은 지금 돌아보아도 그리울 정도였다. 수요일 저녁의 성인반 교리시간과 함께 일요일 주일미사 후에는 대성전에서 최석호 신부님이 가르치는 전체 예비신자 교리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다들 줄을 서서 손바닥만한 출석표에 도장을 받아야 했다. 자식을 둘이나 둔 다 큰 어른이 그 출석표를 어린 초등학생들 머리 위로 내밀면서 “이놈들아, 아저씨부터 도장 좀 받자!” 하고 호통을 칠 정도로 즐겁기만 했으니, 열심은 열심이었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사도신경과 함께 찾아왔다. 나는 그때를 내 생애를 묶는 몇 번의 매듭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 무렵 내가 살고 있던 집 거실 바닥은 바둑판무늬로 되어 있었다.

아직 돌이 안 된 아들을 안고 잠을 재우면서 나는 그 바둑판무늬 거실을 ‘사방치기’하듯이 오가면서 사도신경을 외웠다. 생각했다. 내 몸이, 내 팔이, 내 손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한 일은 헤일 수 없이 많으리라.

그러나 아들을 잠재우며 사도신경을 외울 때,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하고 가만가만 속삭일 때, 내 팔이 이보다 더 질박하고 아름다웠던 시간은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낯설기만 했던 미사 시간에도 나는 늘 눈 밑이 젖어 있곤 했다.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하는 말을 들을 때면 눈이 흐려지며 이슬이 맺혔다.

낯설고 행복했고 기쁨 가득한 나날이었다고 지금도 기억하는 그때, 그렇게 시작한 두 번째 예비신자 시절이었으나 또 실패였다. 이번에는 자만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내가 걸린 문턱은 ‘새롭게 다시 태어나라’는 데 있었다. 부정과 자성이었다.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뉘우치고 용서받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거기 온몸을 던져 무릎을 꿇지 못하고, 자꾸만 고개를 쳐들었던 것이다. 주님, 제가 살아온 모든 것이 잘못이었나요? 다 죄악이고 불의였나요? 그래도 한두 가지 잘한 일도 있지 않았나요? 하던 내 꼴이라니!

결국 예정된 세례식을 3주 남기고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슬프고 허무했다. 결국 또 이렇게 끝나는가 하는 허전함과 결국 또 천주교 신자가 되지 못했다는 서글픔은, 넘칠 듯 찰랑거리며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