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12. 살아계신 성체를 영한 은총의 날

권길중 바오로(한국평협 회장)
권길중 바오로(한국평협 회장)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시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를 자주 체험한다. 로마에서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다. 아무 때나 숙소를 나와 몇 발짝만 걸으면 성당이 있고, 성당마다 서로 다른 시간에 미사가 있어서 행복해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평협 회장의 책임을 지게 된 후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사무실이 명동성당 가까이 있어 매일 미사에 참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해성사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평협에 출근하기 전에는 매일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많은 것을 바쳐야 할 때가 많았다.

어느 본당에 몇 시 미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일을 끝내고 부지런히 달려갔지만 시간이 많이 늦어질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한 번의 미사참례와 영성체도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미사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은총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어느 금요일이었다. 본당 새벽 미사에 참례하지 못해 저녁 미사를 봉헌하는 성당을 찾아가야 했다. 내가 사는 동네 부근 성당들은 약속이나 한 듯 금요일 저녁 미사가 없었다. 그래서 미사가 있는 다른 동네 성당에 가려고 승용차를 몰고 나왔다.

출발 후에는 늘 그렇듯 내비게이션이 들려주는 정보에 따라서 운전했다. 그런데 회전을 해야 할 곳에서 직진을 명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아내에게 “이 아가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지?” 하고 농담하며 직진했다. 그때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내가 기겁하고 소리쳤다. “오토바이! 오토바이!”

오토바이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급하게 내 차 앞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급히 제동장치를 밟았지만 “턱”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와 사람이 앞에 쓰러졌다. 순간 나도 모르게 “오 하느님! 저의 죄가 모자라서 이제 사람을 죽이게 되나요?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화살기도를 바쳤다.

내려서 보니 음식을 배달하는 어린 여학생이었다. 다행히 그 여학생은 툭툭 털고 일어났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혀를 차면서 “내가 증인이 되어주겠다”고 자청하는 이도 있었고 “오토바이 운전자가 면허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등 이런저런 훈수를 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이 아가씨가 살아 있음에 감사드렸다. 한편으로는 사고 수습을 위해 미사참례의 은총을 잃는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곁에서 도와주던 아내가 내 마음을 읽은 듯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 아가씨가 우리를 찾아오신 버림받으신 예수님이에요. 우리의 이기심을 버리고 잘 사랑해드립시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그날은 아주 특별한 우리만의 미사를 봉헌하고, 살아계신 성체를 영한 은총의 날이었다.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던 딱한 그 아가씨는 우리 앞에 찾아오신 예수님이 틀림없었다.

그 예수님을 잘 사랑해 드리기 위해서 받을 수 있었던 보상을 잃었고, 할증 보험료를 물었다. 손실을 본 것이 사실이지만 나와 아내는 뜻밖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알아뵙고 잘 사랑해드릴 수 있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큰 은총을 받게 되었다.

“하느님, 저희가 무엇이라고 이렇게 큰 은총을 공으로 주십니까? 감사드릴 뿐입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