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친구로부터 한 이야기가 담긴 전자우편을 한 통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 동생이 있는 누나의 글이었다. 여학생의 남동생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성장이 멈추는 병에 걸렸다.
동생은 다른 아이들보다 몸은 왜소했지만 명랑하게 잘 지냈다. 해마다 가을 운동회만 되면 부모님과 누나를 울린다고 했다. 달리기할 때마다 다른 친구들보다 반 바퀴나 뒤처지기 때문이었다. 끝까지 달리는 동생을 그냥 보고 있는 게 너무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 운동회 때는 가족들만 울린 것이 아니라, 운동장을 가득 메운 학부모 모두를 울린 일이 생겼다.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쏜살같이 내달렸는데, 그날도 동생은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옮겨봤지만 역시 뒤처졌다.
1등으로 달리던 아이가 결승점 앞에서 갑자기 달리기를 멈췄고, 그 뒤를 따르던 다른 친구들도 역시 그 아이 옆에 나란히 서서 동생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동생이 도착하자 아이들은 다 같이 손을 잡고 보폭을 동생에게 맞춰 동시에 결승선을 밟았다.
그렇게 모두가 1등이 됐다는 이야기였다. 그 모습을 본 학부모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일제히 어린이들에게 박수를 보냈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어린이들의 착한 행동이 경쟁이 일상화된 어른들을 감동하게 한 것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삶을 되돌아봤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아이의 생각을 들어보려 하기보다는 “너는 내 아들이기 때문에 무조건 1등이어야 한다”고 다그친 일도 마음에 잡혔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내 반 학생들은 공부는 물론이고 교실 환경미화, 교내 합창대회 등 성적을 내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꼭 1등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도 더는 자랑거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그 책무를 느끼고 그에 알맞은 봉사를 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함을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함께 1등을 유도했던 아이의 말이 가상했다. “OO는 달리기는 못해도 공부를 잘해서 우리에게 공부를 가르쳐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달리기로 갚은 거예요.” 어린이들이 자신의 탤런트로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이 무지개처럼 빛나는 느낌이었다.
인류의 두 번째 범죄라고 말하는,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일도 카인이 동생인 아벨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에서 저지른 일이다. 마르코 복음 10장에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있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다른 제자들은 그 형제를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했다고 기록돼 있다. 형제가 ‘제자 공동체’라는 일치의 집단에 균열을 초래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 요구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는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고, 당신처럼 모든 이를 섬겨야 한다”고 단언하신다(마르 10,35-45 참조).
이 어린이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모두의 재능은 하느님께 거저 받게 된다. 거기에 자신의 노력을 더 하기는 하지만 재능을 자기만 독점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교회가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다른 이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공동체가 됐으면 참 좋겠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