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하셨을 때 일이다. 교황님을 가까이에서 뵙고 싶은데 뜻 같지 않아 고민하던 한 형제님이 “옆집 어린아이라도 잠깐 빌리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교황님께서 차를 타고 가시다가 어린이를 보시면 차를 세우고 아이를 축복해 주셨기 때문이다.
꽃동네를 방문하셨을 때 일이다. 조용히 제 손을 빨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신 교황님께서 아이의 손가락을 빼고 당신의 손가락을 대신 물리셨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마태오 복음 18장과 마르코 복음 9장, 루카 복음 9장에 예수님께서 어린이에 대해 하신 말씀이 소개된다. 제자들이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 하고 여쭙는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제자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3-5).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를 두고 논쟁하던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도 말씀하신다.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순수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들이 해맑고, 생각이 단순하고, 순수해 보인다. 너무 여려 보여서 얼른 도와주고 싶다. 달라고 조르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찾아서 그것을 주고 싶을 만큼 여리다.
어른의 사회는 그와 다르다. 그 상대가 누가 됐던 그보다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면, 그를 얕보고 지배하려 한다. 요즘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 제자들 사이에서도 ‘누가 큰 사람인가’로 논쟁이 일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는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20대 때부터 본당 사목회 총무를 맡을 정도로 일찍부터 교회 안에서 봉사할 수 있었다. 주임 신부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칭찬을 받으면서 내가 가장 ‘큰 사람’인줄 알고 살았다.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자랑삼아 일을 맡았다.
일이 잘 마무리돼 좋은 결실이 있을 때마다 내가 지닌 능력을 뽐내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의 교만을 채우는 재미로 봉사(?)한 것이다. 주인이신 하느님, 나에게 필요한 은총으로 일을 도맡아 주신 하느님은 전혀 보이지 않으시고 나의 허명(虛名)만 가득 남았던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것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활동하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수없이 많은 이웃을 만나고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이루시는 기적일 것이다. 그러니 내 속이 환하게 들여다보일 만큼 맑은 영혼이 되고 싶다.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이 돼 진정한 하느님의 일꾼으로, 남은 날을 채우고 싶다. 함께 봉사하시는 모든 형제에게 “잘하셨습니다”라고 공을 돌려드리고, 그분들을 섬기며 살고 싶다. 나를 아프게 하는 형제에게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자비로우신 하느님처럼 나도 자비로운 그분의 종이 되고 싶어진다.
몽테뉴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나도 겸손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읽고 배워야겠다. “나는 하느님의 종 중의 종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교황님을 따라서 살고 싶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