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례는 계속되었습니다. 다음 순례지 나자렛으로 떠났습니다. 나자렛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움푹 들어간 그릇 같은 골짜기 속의 도시였습니다. 하늘은 맑게 개었습니다. 올리브 나무는 짙게 푸르렀습니다. 세상에서 못 볼 것 같은 나무를 보았습니다. 나무는 침묵 속에 빛나는 푸른 열매들을 익혀 가고 있었습니다.
나자렛은 가브리엘 대천사가 하느님의 말씀을 마리아에게 전한 곳입니다.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루카 1,26-27). 그리하여 산촌 나자렛은 하느님 구세사의 출발점이 되는 신앙의 땅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닿은 곳은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이었습니다. 성당은 성모님께서 살던 집터 위에 세워졌다고 했습니다. 성당 지하에는 주님의 탄생을 알린 동굴이 있었습니다. 동굴 가운데에는 ‘바로 여기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신앙고백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말씀 그대로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구세주를 잉태한 신비의 장소였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했습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28-32).
하느님께서는 성모님 말씀처럼 비천한 처녀를 택하셔서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라고 말합니다.
마리아의 잉태를 눈치챈 요셉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이 믿음을 저버렸으니 무슨 까닭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속이 깊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마리아와 헤어지기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마태 1,19). 그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밴 아기는 성령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0-21).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는 하느님께서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하셨는지를 명백하게 밝혀주는 성령의 역사임이 분명해졌습니다. 요셉에 대한 꿈의 계시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구할 능력이 있다는 것과 이 구원을 이루려고 약속하신 구세주를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게 할 의지가 있음을 충분히 나타낸 사건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동정녀 잉태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쓰셨습니다. 저희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믿고 받아들인 순연한 신앙의 모범을 마리아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어쩌면 마리아의 응답 순간은 하느님께서 이루신 ‘천지 창조’에 비길 만큼 큰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서 하느님 자신이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살과 피를 취하셔서 그렇습니다. 순종하신 성모님은 진리 앞에 자유로워져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연결하는 우리들의 신앙 통로가 되셨습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