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19.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이창건 승훈 베드로(아동문학가)
이창건 승훈 베드로(아동문학가)

베들레헴.

몸은 버스에 실려 있으나 마음으로는 나귀에 성모님을 태우시고 베들레헴으로 향한 성 요셉과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작은 도시었습니다. 베들레헴은 히브리어로 ‘빵의 집’이라 했습니다. 베들레헴을 둘러싼 높은 장벽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슬픔이 솟아 흘렀습니다.

저희는 버스에서 내려 큰길로 나와 언덕길을 올랐습니다. 주님 탄생 기념 성당이 눈에 닿았습니다. 성당 앞 광장에는 많은 순례자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당 입구는 낮고 좁아 허리를 굽혀 성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검은빛의 긴 회랑이 나왔습니다.

성당 중앙 제대 바로 아래에는 주님 탄생 동굴이 있었습니다. 동굴 안 바닥에는 ‘베들레헴의 별’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동굴에 손을 넣고 주님의 탄생 축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탄생 동굴에서 계단으로 내려온 ‘구유 동굴’에는 내밀한 침묵이 가득했습니다.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요셉도 나자렛을 떠나,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루카 2,17).

나그네들의 인생 여정에서 여관이 되시고자 하셨던 구세주, 막상 그분이 태어나시고자 할 때 여관에는 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관에서 태어나셔서는 안 될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태어나실 곳은 마구간의 구유여야만 했습니다. 빈한한 구유는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절대 고독이 택한 당신 외 아드님의 출생 장소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구세주가 탄생하신다면 아마도 궁궐이나 귀족의 집에서 호사스럽게 태어나실 줄 알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신심 깊고 통찰력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서 초월적인 방식으로 메시아를 오시게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기 예수 탄생을 통해 하늘나라는 저 높은 어떤 곳이 아닌 이 땅의 다른 어떤 곳에도 있을 수 있다는 징표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구유에서 태어나셨는지를 저희는 잊고 지냅니다. 지금 구유에 누인 구세주를 보고 있으나 저희는 그분 앞에서 눈을 감고 있습니다. ‘소도 제 주인을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 준 구유를 아는데’ (이사1,3) 저희는 애써 모른 체합니다. 그분께서 베들레헴에서 천만 번 태어나신다 해도 지금 저희 안에서 그분을 다시 태어나시지 못하게 한다면 예수 탄생의 의미는 사라지고 맙니다.

주님, 구유에 누워 계신 당신께 경배드리나이다. 이 세상에서 가난함으로 버림받는 영혼들이 없게 하러 오신 주님, 찬미 받으소서. 몸의 병듦으로 버림받는 영혼들도 없게 하러 오신 주님, 흠숭 받으소서. 마음을 앓는 아픈 영혼들은 치유 받게 하러 오신 주님, 저희의 겸허한 감사를 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3-14)

 

출처: 가톨릭평화신문